앞 내용: 이후계속
敦煌 寫本의 초기 선종 문헌, 특히 [二入四行論及略序等(급략서등)]을 道宣(도선) 이전이라고 하는 새로운 의견이다. 敦煌本 [二入四行論]을 발견한 후 이미 60년이 경과한 지금 다시 道宣의 [績高僧傳]을 축으로 敦煌本의 성립 경과를 다시 조사해 보고 싶다. 敦煌本(돈황본)에 無上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道宣에 무상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많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적어도 [楞伽師資記(능가사자기)] (T85-1284c)에 전하는 [略辨大乘入道四行(약변대승입도사행), 弟子曇林序(제자담림서)]는 績高僧傳(적고승전)을 이어받고 있다. [傳燈錄(전등록)] 第三十(T51-458b)에 수록된 것은 [楞伽師資記]의 텍스트에 의한다. 결국 [績高僧傳]에 주장된 이른바 楞伽宗(능가종)의 전통을 근거로 한다. 達摩가 慧可에게 四卷 楞伽(능가)를 주었다는 것은 玄장 이후의 일파의 주장이고 '玄장'이 스스로 인도에 가서 護法系(호법계)의 唯識(유식)을 전하였다고 하는 法相宗(법상종)의 전통을 의식하고 있다. '玄장'보다 훨씬 오래된 시대에 南天竺(남천축)에서부터 친히 중국에 와서 四卷 楞伽를 전한 求那跋陀羅(구나발타라)를 初祖(초조)로 하고 같은 南天竺으로부터 北魏(북위)에 와서 正法을 慧可에게 전한 菩提達摩가 소수의 제자에게 가르친 말을 慧可의 友人(우인)인 曇林(담림)이 기록한 [略辨大乘入道四行, 弟子曇林序(제자담림서)]에 의해 그 宗(종)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이 나라를 보니 오직 이 경 뿐이다(前出).
왜 四卷 楞伽(능가)가 아니면 안 되는가? '玄장'의 新譯(신역) 佛敎는 특히 [成唯識論(성유식론)]의 護法(호법)의 설을 올바른 뜻[正義(정의)]으로 하는 것에 근거를 두고 처음으로 명확하게 된 당시의 말이다. 그렇게 '玄장'이 護法(호법)의 설을 正義로 하는 것에 대하여, 또 다른 입장에서부터 다른 것을 正義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金剛三昧經]과 [金剛三昧經論]에 근거한 일파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金剛三昧經論]은 신라 원효의 저술이지만 근거를 둔 것은 佛說이다. 佛說의 권위는 論師(논사)의 그것보다 높다. [菩提達摩二入四行論]은 [金剛三昧經]에 근거한 것이다. 우선 그런 二入四行說의 근거인 [金剛三昧經] [入實際品(입실제품)]의 텍스트를 보자.
부처가 말하기를 二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는 理入이고 하나는 行入이다. 理入이라고 하는 것은, 깊이 믿어 衆生의 眞性(진성)이 다르지 않고 一(일)도 아니고 共(공)도 아니고 다만 客塵(객진)에 가려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니 覺觀(각관)에 凝住(응주)해서 佛性을 諦觀하라.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며, 나도 없고 남도 없어 凡聖(범성)이 不仁인 金剛心地(금강심지)에 견고하게 머물러서 움직이지 말고 寂靜無爲(적정무위)하게 해서 분별함이 없음을 이것을 理入이라 부른다 (T9-369c).
行入은 당분간 제쳐놓는다. 다음에 [績高僧傳]의 [菩提達摩章]에 인용한 理入說(이입설)의 텍스트를 본다.
그런즉 入道는 여러 길이지만 요컨대는 오직 두 종류뿐이다. 理와 行을 말한다. 가르침에 의지해서 宗(종)을 깨닫고, 含生(함생)과 함께 眞性은 하나인데 客塵(객진)에 장애되는 까닭에서일 뿐이라는 것을 믿는다. 거짓[僞(위)]을 버리고 진실[眞(진)]에 돌아가고 壁觀(벽관)에 凝住(응주)하라. 自他가 없고 凡聖이 같아 하나이다. 견고하게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고 他敎(타교)에 따르지 않고 道(도)와 은밀히 부합해서 寂然無爲(적연무위)함을 理入이라고 이름짓게 된다 (T50-551c).
두 텍스트를 비교해 보면 언어의 사용이 꽤 틀리지만 공통적인 곳도 많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근거했다고 판단된다. 대체로 理入과 行入이라고 하는 다른 곳에는 예가 없는 구성이 문제인 것 같다. 원래 [金剛三昧經]은 入字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入實際品(입실제품)]의 노리는 바이다. 入(입)이라고 하는 것은 無入의 入이고 그것이 보살의 本利이고 깊이 無際(무제)에 들어가서 濟度(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胡適(호적)을 위시하여 우리 일본의 鈴木大拙(영목대졸), 宇井伯壽(우정백수), 關口眞大(관구진대) 등의 이 50년 정도 동안의 初期禪宗史(초기선종사)에 대한 발언은 반드시 二入四行說을 언급하였지만, 그 내용에 깊이 파고든 것은 없다. 敦煌本이 道宣(도선)에 앞선다는 선입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敦煌本 [二入四行說]을 菩提達摩의 眞說이라고 하는 데에서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생각하는 安心感(안심감)이 있었다. 작자 문제로 시종하여 작품의 동기에 언급한 것은 없다. 초기 선종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한 [金剛三昧經]의 음미는 불가결한 일의 하나이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하더라도 상호관계는 확실하다. 원효의 [金剛三昧經論]에서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
敎(교)에 의하여 理를 닦아 理入行入하는 까닭에 入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나 實際(실제)는 無際(무제)를 際(제)로 하는 까닭에 二入은 다른 것이 아니고 無入의 入이다 (T34-982b).
'敎에 의해 理를 닦는다'는 원효의 코멘트에 주목하고 싶다. 敎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金剛三昧經]의 것이다. 理는 다음에 말하는 敎理(교리)이다. '理에 順해서 信解(신해)하고 아직 證行(증행)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理入이라고 이름 붙인다', '敎에 의해서 理를 닦는다'는 것은 논의가 쳇바퀴 돌 듯 진전 없음을 피할 수 없지만 지금은 닦는다[修]고 하는 行이 중요하다. 覺觀(각관)에 凝住(응주)하고 佛性을 諦觀하는 것, 金剛心地에 住하고 堅住不移(견주불이)한 장소에 처하고, 他敎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데 [楞伽經]의 宗에 따르는 것이다. 覺觀에서 壁觀(벽관)에로 텍스트의 차이는 크다. [金剛三昧經]과 四卷 楞伽, 동일한 如來藏系(여래장계)에 이미 두 파의 움직임이 있었다. 法沖(법충)이 전하는 바와 같이 南天竺一乘宗에 의해 [楞伽經]을 행하는 사람들이 壁觀(벽관)을 虛宗(허종)이라고 하는 것이고 虛宗은 바로 般若이다 ([初期禪宗史書の硏究] p.440), [金剛三昧經]은 아직 거기까지 행하지 않는다. 玄장系의 唯識(유식)과 南天竺一乘宗(남천축일승종)과의 중간에 있는 논리가 지금은 특히 중요한 것이다. 원효는 理入을 行入의 전 단계 요컨대 信解(地前:지전)의 位로 한다. 원래 [入實際品]은 階位(계위)를 설하는 것이 목적이고 理行二入도 역시 그 일부이다. 敎學으로서는 당연한 이해이고 이른바 達摩의 二入四行論과는 전적으로 다른 발상이면서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원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理入이라는 것은(者) 理에 順해서 信解(신해)하지만 아직 證行을 得하지는 못했으므로 理入이라 한다. 位는 (十)地前에 있다. (그렇지만) 行入이라는 것은(者) 理를 證하고 行을 修해서 無生行에 들어가는 까닭에 行入이라 한다. 位는 地上에 있다 (T34-985a).
하는 김에 行入의 텍스트 및 원효의 코멘트를 모두 살펴본다.
經에 말하기를 行入이라는 것은(者) 마음이 傾倚(경의)하지 않고 그림자에 流易(유역)이 없고 所有(모든) 處에서 念을 고요히 해서 구하는 곳이 없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고 흡사 大地와 같이 心我를 버리고 떠나서(損離: 손이) 중생을 救度(구도)함에 無生無相(무생무상)이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論에 말한다. 地上의 證入의 행을 밝히고 있다. 心이 傾倚(경의)하지 않는다는 것은(者) 如理(여리)의 智心(지심)이 攀緣(반연)하지 않는 까닭에서이고 攀緣(반연)의 心이 生起하지 않는 까닭에서이다. 그림자에 流易이 없다는 것은(者) 如理의 境(경)이 三際(삼제)를 떠나 있는 까닭이다. 流變(유변)한 境像(경상)이 復現(복현)되지 않는 까닭이다. 있는 모든 一切 世間의 福樂(복락) 내지 菩提, 大涅槃의 果까지도 이에서는 일체 모든 것이 願求하는 것이 없다. 平等에 통달하고 此彼(차피)가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경계의 바람에 움직여지는 것이 없다. (이것은) 自利의 行入을 밝힌 것이다. 損離(손이) 이하는 他를 들어가게 하는 行이고 二空을 證함을 갖고 人法의 相을 떠나는 까닭에 능히 보편적으로(두루) 일체를 救度(구도)하고 離心(이심)까지도 生함이 없고 또한 境의 相도 없다. 그런데도 그 寂滅(적멸)의 生을 취하지도 않고 항상 일체 중생을 버리지도 않는다. 그것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와 같이 되는 二行을 行入이라 한다(T34-985b).
理入(이입)을 行入(행입)의 근거로 하고 行入을 理入의 上位에 놓은 것은 실천을 근거로 한 것에서 부터인데 行入이 方便(방편)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는 것에 특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階位論(계위론)으로서의 코멘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깊이 믿어 중생의 眞性을 - - - - - - - - - - - - - 十信入位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覺觀에 凝住하여 - - - 十住入位 佛性을 諦觀하라 - - - - - - - - - - - - 十行入位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어 - - - - - - - 十廻向位
이렇게 해서 비로소 行入에 들어간다. 원효의 階位論(계위론)은 [金剛三昧經] 그것에 근거하므로 해석은 어디까지나 비교에 그친다. 원효의 코멘트와 [金剛三昧經]의 텍스트를 신경질적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理入을 이미 얻어 自他平等空(자타평등공)인 까닭에 心은 金剛과 같고 견고하게 住해서 물러나지 않는다. {梵網經(범망경)} 중에서는 十金剛이라 하고, {仁王經(인왕경)} 중에서는 十회心이라 한다. 모두 十廻向의 異名(이명)이다 (T34-985a).
요컨대 원효는 理에서 行으로 昇進(승진)한다. 行入에 와서 理行 一體가 된다. 道宣과 [楞伽師資記(능가사자기)]의 理入四行이 理入을 중시하고 覺觀을 壁觀으로 하는 것과 커다란 차이를 가진다. 원효가 行入에 중점을 둔 것은 양자의 다른 포인트이다. [略辨大乘入道四行(약변대승입도사행), 弟子曇林序(제자담람서)]가 먼저 있고 道宣(도선)과 원효가 그 일부를 정정했다고 하는 종래의 대전제를 인정함이 좋을까, 어떨까? 되풀이해서 말한다. 敦煌(돈황)의 텍스트에 無上(무상)의 권위를 두는 것은 道宣에 무상의 권위를 두는 것보다도 위험하다. 菩提達摩 二入四行說에 의해 [金剛三昧經]이 창작되었다고 하는 것보다도 [金剛三昧經]을 근거로 해서 [績高僧傳(적고승전)]의 텍스트가 생기고 [楞伽師資記]의 [略辨大乘入道四行, 弟子曇林序]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역사적 추이에 주목하고 싶다. 적어도 텍스트로서의 순위는 [金剛三昧經]을 最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略辨大乘入道四行(약변대승입도사행), 弟子曇林序(제자담람서)] 중에서 理入의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본다.
理入이라는 것은 敎에 의지해서 宗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깊이 믿어라. 含生(함생) 凡聖(범성)이 동일한 眞性(진성)임을. 다만 客塵(객진)에 妄覆(망복)되어서 능히 顯了하지 못할 뿐이다. 若也(만약에) 妄을 버리고 眞에 돌아간다면 壁觀(벽관)에 凝住(응주)하고 自他가 없다. 견고하게 住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금도 文敎(문교)에 따르지 않고 이에 곧 진리에 冥符(명부)하고 분별이 없고 寂然(적연)으로서 이름이 없다. 그것을 理入이라 한다 (T85-1285a).
[金剛三昧經]과 績高僧傳(적고승전) · 楞伽師資記(능가사자기)의 텍스트를 비교하면 최후의 것이 가장 잘 정돈이 되어 있다. [楞伽師資記]는 확실히 [績高僧傳]을 이어받고 있다. [略辨大乘入道四行(약변대승입도사행), 弟子曇林序(제자담림서)]가 道宣(도선)을 이어받고 있는 증거는 우선 弟子曇林序의 5字이다. 菩提達摩의 제자에 慧可와 僧育(승육)이 있었다는 것을 弟子曇林序는 증명한다. 無臂林(무비림)인 曇林(담림)이 직접 慧可(혜가)의 友人(우인)이었다는 것을 道宣은 힘써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曇林(담림)은 北魏末(북위말)의 업城(업성)을 무대로 佛陀扇多(불타선다)와 菩提流支(보리유지), 毘目智仙(비목지선) 등 如來藏系(여래장계) 텍스트를 전한 譯經三藏(역경삼장)의 일을 도왔던 筆授證義(필수증의)의 전문가이다. [승만경]의 注를 썼다는 것을 吉藏(길장)의 [勝만經寶窟(승만경보굴)]이 전한다. 菩提達摩와 慧可의 불교에는 그런 曇林(담림)의 共力(공력)이 필요했었는가? 아니다. 후에 楞伽宗을 주장한 사람들이 曇林의 권위를 필요로 했다. 弟子曇林序의 다섯 字는 楞伽宗의 텍스트에 필요한 金看板(금간판: 세상에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상품)이다. 道宣이 [略辨大乘入道四行, 弟子曇林序]를 알고 있었는가? 다시 말하면 [績高僧傳]의 菩提達摩傳이 曇林傳에 의한 것인가, 아닌가? 실제로는 미묘한 것이 있어서 속단은 할 수 없더라도 앞서 인용한 楞伽宗(능가종)의 四世懸記(사세현기)는 명백히 慧可의 四世의 시대, 이른바 東山法門의 움직임과 함께 그 근거처를 四卷 楞伽로 하는 일부의 제자의 作意에 지나지 않고 曇林(담림)을 達摩(달마)의 제자로 할 필요는 없다. 이른바 당초의 二入四行說은 佛說의 권위가 필요했을 뿐이고 弟子 曇林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것을 弟子 曇林의 筆授(필수)로 변경시키는 새로운 권위가 필요한 것은 楞伽宗(능가종) 운동이 진행되면서 급히 東土(동토)의 祖師(조사)의 계보가 선 그어진 후의 일이다. [楞伽人法志(능가인법지)]와 [楞伽師資記(능가사자기)]가 차례로 생겨난 이유이다. 사실을 말하면 曇林(담림)은 北魏末(북위말)의 譯經者(역경자)이지만 四卷 楞伽와 관계가 있는가? 반드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金剛三昧經]과 [績高僧傳]의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차이이다. 당시 達摩宗의 제자들은 [金剛三昧經]의 권위에 의거하면서 그 텍스트에 만족하지 않고 감히 수정을 가한 것이다. [金剛三昧經]의 문맥에 없는 理와 行의 이해를 위시하여 覺觀(각관)을 壁觀(벽관)으로 변경시킨 것, [金剛三昧經]에는 반드시 명확하지 않은 行入의 요소를 四行(四法)으로 해서 方法化(방법화)한 것, 거기서부터 또 如是安心(여시안심), 如是發行(여시발행), 如是順物(여시순물), 如是方便(여시방편)이라고 하는 새로운 視點(시점)이 첨가되었다.
일찍이 [初期禪宗史書の硏究]에서 얼마쯤 전문적으로 문제삼았던 것처럼 '玄장' 불교에 對極的(대극적)인 전통파로서 [績高僧傳]은 法沖傳(법충전)을 증보하고 거기에 慧可의 宗系를 내걸었다. 이른바 四世懸記(사세현기)는 法沖系(법충계)의 楞伽宗(능가종)과 서로 얽힌다. 法沖은 玄장의 신불교에 대해서 四卷 楞伽를 내세운 것이지만 達摩 · 慧可 계통의 楞伽宗과 명백히 구별짓고 있다. 南天竺一乘宗(남천축일승종)의 깃발은 達摩 · 慧可 계통의 것이다. 道宣이 達摩 · 慧可 계통을 찬양하여 大乘壁觀功業最高(대승벽관공업최고)라 하고 達摩를 동시대의 僧주(승주)에 비교하여 '摩(마)는 虛宗(허종)을 旨(지)로 한다'고 한 것은 모두 南天竺一乘宗이라고 불리는 般若主義의 움직임을 토대로 한 것이므로 吉藏(길장)을 祖(조)로 하는 三論宗(삼론종)에 기운다. 사실 三論宗에서부터 나온 法如(법여)와 동일한 東山 法門을 崇山(숭산) 少林寺에 세운 최초의 祖師라 말해도 좋지만 四卷 楞伽를 내세우는 法沖(법충)과, 동일한 東山 法門의 玄?과는 전적으로 노선을 달리 한다. 요컨대 道宣이 [績高僧傳]의 補正을 서두르는 貞觀(정관) 말년 시대의 禪佛敎는 어지러운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菩提達摩章의 텍스트는 그러한 움직임의 中核(중핵)인데, 현존 最古의 집대성으로 보고 싶다. 楞伽宗과는 직결되지 않는 達摩 · 慧可系의 일부 제자들이 [金剛三昧經]의 권위를 빌려서 成文化(성문화)한 텍스트가 아닐까? [績高僧傳] 이후의 것은 지금은 잠시 제쳐놓고 [績高僧傳]의 텍스트 문제를 보다 명백하게 하기 위해서 그 견본이 되었을 [金剛三昧經]의 교학 체계에 대해서 조금 음미해 보자. 원래 [入實際品(입실제품)]의 동기는 그 앞에 위치한 [本覺利品(본각이품)]을 이어받아 本覺의 利로 중생을 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서, 本覺의 利가 문제인 것은 당연할 것이다. [本覺利品]은 無住菩薩(무주보살)을 상대로 한 설법인데, 그 이름과 같이 無住의 理가 테마이다. 無住의 理라고 하는 것은 本利(본리)에 契合(계합)하는 것이다. 本利라는 것은 本覺의 利이다. 원래 [金剛三昧經]의 無住說은 常住涅槃(상주열반)의 속박을 없애버리는 것이 동기이고 [大般涅槃經]이 주장하는 四德(사덕)의 하나인 '常'에 머무는 집착을 문제삼고 있다. 常住涅槃은 열반의 속박이다. 속박은 움직임에 대비되고 움직임은 고요함[寂]에 대비된다. 열반의 고요함[寂]에 머무는 것이 열반의 속박이고 속박은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열반의 움직임을 떠나서, 이와 같은 地에 머물러 마음에 머무르는 바가 없고 出入이 없어 庵摩羅識에 들어간다 (T9-368c).
庵(암:高麗版에서는 庵)摩羅識이라는 명칭은 [金剛三昧經]에 특유한 것인데, 다음에 따로 고찰해 보고 싶지만 원효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
唵摩羅(암마라)라는 것은 第九識이다. 眞諦三藏의 九識義는 이 文에 의해서 세운 것이다. 저 章에 설한 것과 같다 (T34-978a).
저 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金剛三昧經]의 성립을 7세기 후반으로 한다면 眞諦의 九識義, 그것이 대단히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은 ㅁ두를 後考(후고)에 미루고 庵摩羅識에 들어가는 것이 理入 行入의 목적이고 入이라는 것은 不入이므로 요컨대 轉識得智(전식득지)의 장소는, 원효에서는 理入에서 行入으로 옮겨가는 곳이고, 行入은 결코 四行 등이 아니고 완전한 자각이고 거기가 庵摩羅識에 들어간 것이라고 확인해 두는 데에 그친다. 기본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諸佛如來는 항상 一覺으로써 諸識을 굴려[轉(전)] 唵摩羅(암마라)에 들어가게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 중생은 本覺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一覺으로써 諸衆生을 깨닫게 하고 저 중생들을 모두 本覺함을 얻게 해서 모든 情識(정식)이 空寂(공적)하고 無生인 것을 깨닫게 한다. 왜 그런가 하면 本性(본성)을 決定(결정)하면 본래부터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T34-978a)
굴린다[轉]는 것은 명백하게 轉識(전식)의 뜻이다. 諸識(제식)을 굴리는[轉] 힘이고 唵摩羅識에 들어가는 것이다. 唵摩羅識, 그것의 작용이 一覺이라고 말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一切 衆生은 본래 本覺하고 있기 때문이다. 一切衆生本覺의 一句는 후에 神會(신회) 등이 곧잘 사용하고 있다. 一切衆生本來涅槃(일체중생본래열반) · 無漏智性(무루지성) · 本自具足(본자구족)과 완전히 같은 의미이다(胡適校(호적교), [神會和尙遺集(신회화상유집)], pp.132·232 등). 그 本覺이 항상 一覺으로써 諸情識(제정식)이 (본래) 空寂(공적)하고 無生(무생)임을 깨닫는 것이다. 완전한 동어반복, 동의어의 되풀이로 끝마치는 혐의가 있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의 소식을 여래는 반복해서 설명한다. 頓覺(돈각)이라 해도 좋고 頓悟(돈오)라 해도 좋다. 지금은 그것을 一覺(일각)이라 하는 것이다. 원효는 또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 원효는 또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
이 답은 바로 本利(본리)의 義를 널리 한 것인데 거기에 二句가 있다. 먼저 제기하고 다음에 그것을 해석한다. '諸佛如來(제불여래)는 항상 一覺으로써'라는 것은 能化(능화)의 本을 보인 것이다. '(一覺으로써) 諸識(제식)을 굴려서 唵摩羅(암마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所化(소화)의 굴림[處(처)]을 보인 것이다. 해석에 二句가 있다. 바로 해석[正釋(정석)]함과 굴려서 해석[轉釋(전석)]하는 것이다. 正釋하는 중에서 '一切衆生本覺'이라고 하는 것은 앞의 能化의 本을 해석한 것이고 '一覺'이라고 말하는 것은 諸佛이 이 (곳)를 體로 해서 이에 (처음으로) 능히 普化(보화)하는 까닭에서이다. '항상으로써[常以(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本覺으로 他(衆生)를 깨닫게 하는 까닭에서이고, 그러므로 '항상 一覺으로 諸衆生을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저 중생을 모두 本覺함을 얻게 한다'는 것은 所化(의 중생)가 轉入(전입)한 것을 해석한 말이고, 本覺이라는 것은 바로 唵摩羅識이고, '本覺함을 얻는다'는 것은 入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本覺에 들어갈 때는 모든 8식이 본래 적멸함을 깨닫고 覺이 究竟(구경)이므로 諸識(제식)이 생겨나지 않으므로 그렇다. '諸識은 寂滅하고 無生'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一句는 바로 (앞에 말한) '諸識을 굴린다'는 句를 해석한 것이다. 이 텍스트는 자세히 本始(본시)二覺(의 뜻)을 나타낸다. '一切衆生本覺 云云'이라고 있는 것은 (바로) 本覺의 뜻이고, '諸情識(제정식)이 寂滅(적멸)하고 無生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始覺(시각)의 뜻이고, '始覺이 곧 本覺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이하는 第二 轉釋(전석)인데 앞에 말한 始覺의 覺이 寂滅함을 해석한 것이다. (결국) 諸八識은 緣(연)에 따라 動轉(동전)하지만 그 定性(정성)을 구하면 모두 (파악해서) 얻을 수 없으므로 '本性을 결정하면 본래부터 움직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본래 움직임이 없으므로 본래 寂滅(적멸)하다 (T34-978a).
길게 인용하였지만 '本覺에 들어갈 때'라고 하는 원효의 코멘트에 주의하고 싶다. 一覺은 衆生의 本覺이고 同一覺의 뜻이지만, 그것은 또 일거에 本覺에 들어간다고 하는 頓覺 · 頓入(돈각·돈입)의 의미를 포함한다. 始覺(시각)의 뜻이라는 것은 始覺이 곧 本覺과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곳에 轉識(전식)의 妙(묘)가 있는 것 같다. 本覺과 始覺이라는 말이 眞諦 譯(진제 역) [起信論(기신론)]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까지도 없다. '始覺이 곧 本覺과 같다'는 句는 사실은 眞諦 譯 [起信論]에 근거하였지만 唐(당)의 實叉難陀(실차난타) 譯에서는 '始覺의 때[時]에 곧 이것이 本覺으로서 다른 覺은 일어나지 않는다(T32-585a)'고 되어 있고 時라는 한 글자가 첨가되어 있다. 원효는 實叉難陀 譯을 몰랐지만 '本覺에 들어갈 때는 모든 8식이 본래 적멸함을 깨닫고'라고 해석하여 轉入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一覺의 설정은 轉入(전입)의 뜻을 위해서이고 始覺이 곧 本覺과 같다는 것, 覺心의 初起(초기)를 명백하게 하는 것이다. [金剛三昧經]은 始覺이란 말을 쓰지 않고 始覺이 本覺과 같다는 것을 특히 一覺이라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轉識(전식)의 뜻을 포함한 始覺門(시각문)으로서의 行入을 설하는 것이 [金剛三昧經]이 노리는 바이다. 本覺으로부터 始覺으로는 아니고 不覺으로부터 始覺에, 여기에 一覺說의 동기가 있다. 예를 들면 원효는 [起信論疏] 上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먼저 또한 本覺에 대비하여 不覺이 일어나는 뜻을 나타낸 다음에 不覺에 대비하여 始覺의 뜻을 해석한다. 이 중의 大意는 始覺은 不覺을 기다리고[待(대)] 不覺은 本覺을 기다리고 本覺은 始覺을 기다린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서로 相對(상대)할 때는 곧 自性(자성)이 없다. 自性이 없는 것은 곧 覺이 없다. 覺이 없는 것은 서로 相對하는 데에 말미암아서이다. 相對해서 이루어질 때에는 곧 覺이 없음이 아니다. 覺이 없음이 아님인 고로 설해서 이름붙이기를 覺이라고 한다. 自性이 있음이 아니라면 이름붙여 覺이라고 한다 (T44-209a).
本覺과 不覺은 서로 相對(상대)하는 이름이다. 覺은 절대이고 對槪念(대개념)을 잡을 수 없으므로 覺의 반대는 不覺밖에 없다. 覺하든가, 覺하지 않든가 이어서 兩者(양자)의 途中(도중)은 없다. 그러한 중간개념이 없는 곳을 임시로 頓覺이라고 이름붙여도 좋지만 頓(돈)은 漸(점)에 대립하는 것이므로 頓覺이라고 하는 이름은 覺 그것의 표현에는 부적당하다. 頓漸의 개념은 원래 階位(계위)에 대한 말이어서 실천의 內實(내실)을 표현하는 것에는 대단히 어울리기 어렵다. 悟(오)도 역시 迷(미)에 대립하는 말이어서 미혹하지 않으면 깨달음도 아니고, 미혹함[迷]을 실질[實]로 할 수가 없고 悟의 조건으로 하는 것은 안 된다. [起信論]이 本覺과 不覺, 그리고 始覺이라고 하는 三者의 辨證(변증)을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실천에 근거한 것이고 최후는 唯佛與佛(유불여불)의 세계가 된다. 앞에 인용한 원효의 注(주)가 의거한 起信論의 텍스트에 의하면, '心源(심원)을 깨달은[覺]고로 究竟覺(구경각)이라 이름붙이고 心源을 깨닫지 못했으므로 究竟覺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원효가 후자를 金剛已還(금강이환)이라 하고 전자를 '佛地(불지)에 있다'고 말한 所以(소이)이고 覺이든 不覺이든 어느 것이든 漸次(점차)의 중간은 아니다. 말해 보면 本覺과 不覺의 중간에 始覺을 놓는 [起信論]에 대해서 金剛三昧經의 一覺은 그 究竟性을 나타내는 것에 진일보한 것이 있다. 一覺了義라는 것은 一切衆生의 同一本覺인 것이고, 無覺으로써 覺하고, 覺하고서 覺에 머물지 않는 唯一心(유일심)이다. 理入說의 본문에 '金剛心地(금강심지)'라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金剛心地'라는 것은 凡聖(범성)이 不二이고 나도 없고 他도 없어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닌 佛性(불성)에 住(주)는 無住의 住이다.
金剛의 智地(지지)에서는 解脫(해탈)의 道가 끊어지고 이미 끊고서 無住地에 들어간다. 출입이 없다. 心處(심처)에 있음이 없고 性地(성지)를 결정한다 (T34-979a).
智地라 하고 性地라 하는 것은 아무래도 階位說(계위설)에 約한 말이다 후에 禪佛敎의 別名이 된 心地法門은 그것들을 이어받은 것이다. 본래 [本覺利品(본각이품)]의 테마는 本覺과 本利를 밝히는 것에 있고 覺은 妙觀察(知)[묘관찰(지)]이고 慧日(혜일)의 빛과 같은 것이고, 利는 得本(득본)을 이루어 大法雨(대법우)와 같은 뜻이다. 金剛智地는 佛智地인데 一覺의 聖力(성력)이고 四弘(사홍)의 聖地(성지)이고 一切衆生의 根本覺利(근본각리)임을 가리킨 것이다. 覺이라는 것은 앞에 말한 究竟覺(구경각)이고, 利라는 것은 일체 중생을 성취하는 成佛의 근거이다. 無住菩薩(무주보살)이 이유를 물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一切 衆生은 곧 이 몸 중에(그 근거를) 본래 만족합니까?" 佛은 "如是(여시)"라고 인정한다 (T34-979c).
'一切衆生 卽此身中 本來滿足(일체중생 즉차신중 본래만족)'의 一句는 대단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此身'은 개개의 중생의 몸이고, 여기의 나는 결국 唯我(유아)이다. 후에 臨濟(임제)가 卽今目前聽法人(즉금목전청법인:T47-497b)이라고 부르고 卽今目前孤明歷歷地(즉금목전고명역역지)에서 듣는 者, 이 사람은 處處에 걸리지 않고 十方에 通貫(통관)하고 하고 三界에 自在(T47-498b)라고 하는 것을 金剛三昧經은 이미 먼저 가지고 있다. '覺이라고 하는 것은 妙觀察(묘관찰)하고 慧日의 光과 같다'고 텍스트에 말하는 것과 臨濟가 '光影(관영)을 弄(농)하는 정도의 사람은 이 사람이 諸佛의 本源 云云'이라고 하는 것과 하등 저촉되지 않는다. 나는 일찍이 初期禪宗史書の硏究 (p.81)에서 東山 法門의 텍스트로서, 修心要論(수심요론)의 초두에 인용한 다음과 같은 [十地論]의 句에 특히 주의했던 적이 있다.
[十地論]에 말하기를, 衆生의 身(신) 중에 金剛(금강)의 佛性(불성)이 있어 日輪(일륜)과 같고 體(체)가 밝고 圓滿(원만)하고 廣大無邊(광대무변)하지만, 다만 五陰黑雲(오음흑운)에 덮인 바이다 (T48-37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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