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대웅전(鳳停寺大雄殿)
국보 제311호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조선시대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뒤의 소나무들로서,
모두 가지들이 대웅전쪽을 향하지 않고 다른방향으로 뻗고 있다.
이는 식물이라도 부처님법당을 향해 무례를 저지르는 것을 삼가하기 위해서였다는 후설이 있다.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제15호
고려시대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안에 불상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童僧촬영지 靈山庵
봉정사영산암(鳳停寺靈山庵)
시도민속자료
제126호 (안동시)
조선시대
영산암의 영산이란 원래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영축산을 말한다.
법화경을 설법할 때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상이라고 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고 하며, 법당의 후불탱호로 많이 사용된다.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 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건축적으로는 크게 주목할만한 부분은 없으나
우화루와 송암당 등에서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앞의 조경수법도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 등은
매우 뛰어난 공간처리 수법으로 볼 만 하다.
雨花樓
응진전에서 바라본 마당과 우화루전경
응진전
소나무의 한 변종인 萬枝松
'<♣ 여행 * 독경 ♣> > 성지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楊口 을지전망대와 亥安분지 (0) | 2009.10.10 |
---|---|
지난 여름의 왈츠 - 구리 한강시민공원 (0) | 2009.09.16 |
09년 7월 & 9월의 화엄사와 성삼재 노고단 (0) | 2009.09.14 |
안동 河回마을과 芙蓉臺 (0) | 2009.08.30 |
주야신도 < 수월관음 >- 화엄행 (0) | 2009.08.08 |
[스크랩] 안동 탐방코스 (0) | 2009.08.08 |
철원 孤石亭 (0) | 2009.08.03 |
통영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해상국립공원 (0) | 200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