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 독경 ♣>/성지 * 여행

完州 松廣寺

화엄행 2014. 4. 1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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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는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는데 그때가 신라 진평왕 5년(583)이었다. 그후 경문왕 7년(867)에 구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그 후 폐사가 되어 주춧돌만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던 것을 고려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大성지임을 아시고 표시를 해두었고, 순천 송광사를 개창한 후 제자들에게 본사를 복원·중창할 것을 부탁한지 수백 년이 지난 조선 광해군 15년(1622:임술)에 웅호, 숭명, 운정, 득신, 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중창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일체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왕조실록)를 지키기 위하여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했던 호국도량이다.

또한 석가의 화현이라고 하신 진묵스님께서 1623년(계해년) 대웅전 삼존불 조성시 증명법사로 초청되었으나 부여무량사에서도 동시 초청된 관계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무량사에는 단주를 보내 법력을 나투었는데 주장자가 밤낮으로 꼿꼿이 서서 법상을 물리는 신의함을 나투신 곳이기도 하다.

일주문은 현재의 위치로부터 3km 남쪽 밖인 나드리(무주, 진안방면 도로 입구)라는 곳에 서있던 것을 1814년(순조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옮겼다가 1944년 해방되기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절은 본래 白蓮寺(백련사)라 불렸으며 800동의 당우와 600승려들이 살아 16방사가 즐비하여 16방주(주지)가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