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378호 - 하동 쌍계사 대웅전 목조여래삼세불좌상 및 사대보살입상
(雙磎寺木造三世佛坐像및四菩薩 立像)
좌측에 아미타물, 중앙에 석가모니불, 우측으로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좌로부터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의 사대보살의 입상이 조성되어 있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그리고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이다.
중앙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서
삼불상 중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동그스럼해진 머리는 이마 위쪽과
머리 꼭대기에 중앙계주(계珠)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근엄한 듯 온화한 미소가 엿보인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通肩)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17세기 전반 경 이후 불상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옷 입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되어 사실성이 돋보여 조성 화원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정면을 향하여 본존불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약사불은 굽어보는 듯한 자세와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짧아진 목과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사실성 넘쳐나는 손의 표현, 밋밋한 듯 부피감이 있는 신체 등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옷 입는 방식과 보다 복잡해진 옷주름 등만이 다를 뿐이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에 서 있는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보살상과 관음·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네 구의 상 모두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S자 모양의 늘씬한 체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의 장식을 하였다.
약사불의 양 옆에 있는 일광·월광보살상은 보관 중앙에 해와 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양 옆에 있는 관음·세지보살상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각각 연꽃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천의 자락, 양 손·발 등의 조각 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석가모니불 및 약사불상과 함께 작품성이 뛰어나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7년(1639)에
청헌(淸憲)비구를 비롯한 11명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조선시대 17세기 전반 경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일광보살로 추정
석가모니불
일광보살, 약상뎌래불, 월광보살로 추정함.
약사여래불
국보 제47호 - 眞鑑禪師大空塔碑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환영스님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입당,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시적하였다.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의 높이는 2m 2cm, 혹은 1m,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흠락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하다.
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 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 2.3cm, 자수는 2,423자이다.
眞鑑禪師碑銘과 序
有唐新羅國故知異山雙谿寺敎諡眞鑑禪師碑銘 幷序
前西國都統巡官承務郞侍御史內供奉賜紫金漁袋臣崔致遠奉敎撰幷書篆額
夫道不遠人人無異國是以東人之子爲釋爲儒必也西浮大洋重譯從學命寄刳木必懸寶洲 虛往實歸先難後獲亦猶采玉者不憚崑丘之峻探珠者不辭驪壑之深遂得慧炬則
光融五乘嘉肴則味飫六籍竟竟使千門入善能令一國興仁而學者或謂身毒與闕里之說敎也分流異體圜鑿方枘互相矛楯守滯一隅嘗試論之說詩者不以文害辭不以辭害志
禮所謂言豈一端而已夫各有所當故廬峰慧遠著論謂如來之與周孔發致雖殊所歸一揆體極不兼應者物不能兼受故也沈約有云孔發其端釋窮其致眞可謂識其大者始可
與言至道矣至若佛語心法玄之又玄名不可名說無可說雖云得月指或坐忘終類係風影難行捕然陟遐自迩取譬何傷且尼父謂門弟子曰予慾無言天何言哉則彼淨名之黙
對文殊善逝之密傳迦葉不勞鼓舌能叶印心言天不言捨此奚適而得遠傳妙道廣耀吾鄕豈異人乎禪師是也禪師法諱慧昭俗姓崔氏其先漢族冠盖山東隋師征遼多沒驪貊. 有降志而爲遐甿者爰及聖唐囊括四郡今爲全州金馬人也父曰昌元在家有出家之行母顧氏嘗晝假寐夢一梵僧謂之曰吾願爲何阿(方言謂母)之子因以瑠璃甖爲寄未幾娠
禪師焉生而不啼迺夙挺銷聲息言之勝牙也旣齔從戱必火賁葉爲香采花爲供或西嚮危坐移晷未嘗動容是知善本固百千劫前所栽植非可跂而及者自丱弁志切反哺跬步
不忘而家無斗儲又無尺壤可盜天時者口腹之養惟力是視乃裨販娵隅爲贍滑甘之業手非勞於結網心已契於忘筌能豊啜菽之資允叶采蘭之詠曁種棘負土成墳迺曰鞠
育之恩聊將力報希微之旨盍以心求吾豈匏瓜壯齡滯跡遂於貞元卄年詣歲貢使求爲榜人寓足西泛多能鄙事視險如夷揮楫慈航超截苦海及達彼岸告國使曰人各有志請
從此辭遂行至滄州謁神鑑大師投體方半大師怡然曰戱別匪遙喜再相遇遽令削染頓受印契若火沾燥艾水注卑邍然徒中相謂曰東方聖人於此復見禪師形貌黯然衆不名
而目爲黑頭陀斯則探玄處黙眞爲漆道人後身豈比夫邑中之黔能慰衆心而已哉永可與赤頿靑眼以色相顯示矣元和五年受具於崇山少林寺瑠璃壇則聖善前夢宛若合符
旣瑩戒珠復歸橫海聞一知十茜絳藍靑雖止水澄心而斷雲浪跡粵有鄕僧道義先訪道於華夏邂逅適願西南得朋四遠參尋證佛知見義公前歸故國禪師卽入終南登萬仞之
峯餌松實而止觀寂寂者三年後出紫閣當四達之道織芒屩而廣施憧憧者又三年於是苦行旣已修他方亦已遊雖曰觀空豈能忘本乃於大和四年來歸大覺上乘照我仁域
興德大王飛鳳筆迎勞曰道義禪師曏已歸止上人繼至爲二菩薩昔聞黑衣之傑今見縷褐之英彌天慈威擧國欣賴寡人行當以東雞林之境成吉祥之宅也始憩錫於尙州露岳
長柏寺毉門多病來者如雲方丈雖寬物情自隘遂步至康州知異山有數於菟哮吼前導避危從坦不殊兪騎從者無所怖畏豢犬如也則與善无畏三藏結夏靈山猛獸前路深入
山穴見牟尼立像宛同事跡彼竺曇猷之扣睡虎頭令聽經亦未傳媺於僧史也因於花開谷故三法和尙蘭若遺基纂修堂宇儼若化成洎開城三年」
愍哀大王驟登寶位深託玄慈降璽書餽齊費而別求見願禪師曰在勤修善政何用願爲使復于王聞之愧悟以禪師色空雙泯定惠俱圓降使賜號爲慧昭昭字避
聖祖廟諱易之也仍貫籍于大皇龍寺徵詣京邑星使往復者交轡于路而岳立不移其志昔僧稠拒元魏之三召云在山行道不爽大通棲幽養高異代同趣居數年請益者稻麻成. 列殆無錐地遂歷銓奇境得南嶺之麓爽塏居最經始禪廬却倚霞岑俯壓雲澗淸眼界者隔江遠岳爽耳根者迸石飛湍至如春谿化夏徑松秋壑月冬嶠雪四時變態萬象交光百
籟和唫千巖竟竟秀嘗遊西土者至止咸愕視謂遠公東林移歸海表蓮花世界非凡想可擬壺中別有天地則信也架竹引流環階四注始用玉泉爲牓屈指法胤則禪師乃曹溪之玄
孫是用建六祖影堂彩飾粉墉廣資導誘經所謂爲悅衆生故綺錯繪衆像者也大中四年正月九日詰旦告門人曰萬法皆空吾將行矣一心爲本汝等勉之無以塔藏形無以銘紀
跡言竟坐滅報年七十七積夏四十一于時天無纖雲風雷欻起虎狼號咽杉栝變衰俄而紫雲翳空空中有彈指聲會葬者無不入耳則梁史載褚侍中翔嘗請沙門爲母疾祈福聞
空中彈指聖感冥應豈誣也哉凡志於道者寄聲相弔未亡情者銜悲以泣天人痛悼斷可知矣靈函幽隧預使備具弟子法諒等號奉色身不踰日而窆于東峯之冢遵遺命也禪師
性不散樸言不由機服煖縕黂食甘糠麧芧菽雜糅蔬佐無二貴達時至曾不異饌門人以墋腹進難則曰有心至此雖糲何害尊卑耋穉接之如一每有王人乘馹傳命遙祈
法力則曰凡居王土而戴佛日者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亦何必遠汚綸言於枯木朽株傳乘之飢不得齕渴不得飮吁可念也或有以胡香爲贈者則以瓦載煻灰
不爲丸而焫之曰吾不識是何臭虔心而已復有以漢茗爲供者則以薪爨石釜不爲屑而煮之曰吾不識是何味濡腹而已守眞忤俗皆此類也雅善梵唄金玉其音側調飛聲爽快
哀婉能使諸天歡喜永於遠地流傳學者滿堂誨之不倦至今東國習魚山之妙者競如掩鼻效玉泉餘響豈非以聲聞度之之化乎禪師泥洹當
文聖大王之朝上惻僊襟將寵淨諡及聞遺戒愧而寢之越三紀門人以陵谷爲慮扣不朽之緣於慕法弟子內供奉一吉干楊晉方崇文臺鄭詢一斷金爲心勒石是請
獻康大王恢弘至化欽仰眞宗追諡眞鑑禪師大空靈塔仍許篆刻以永終譽懿乎日出暘谷無幽不燭海岸植香久而弥芳或曰禪師垂不銘不塔之戒而降及西河之徒不能確奉
先志求之歟抑與之歟適足爲白珪之玷嘻非之者亦非也不近名而名彰蓋定力之餘報與其灰滅電絶曷若爲可爲於可爲之時使聲震大千之界而龜未戴石龍遽昇天
今上繼興塤篪相應義諧付囑善者從之以隣岳招提有玉泉之號爲名所累衆耳致惑將俾弃同卽異則宜捨舊從新使目示其寺之所枕倚則以門臨複澗爲對乃錫題爲雙溪焉申
命下臣曰師以行顯汝以文進宜爲銘致遠拜手曰唯唯退而思之頃捕名中州嚼腴咀雋于章句間未能盡醉衢罇唯愧深跧泥甃況法離文字無地措言苟或言之北轅適郢第以
國主之外護門人之大願非文字不能昭昭乎群目遂敢身從兩役力效五能雖石或憑焉可慙可懼而道强名也何是何非掘笔藏鋒則臣豈敢重宣前義謹札銘云
杜口禪那歸心佛陀根熟菩薩弘之靡它猛探虎窟遠泛鯨波去傳秘印來化斯羅尋幽選勝卜築巖磴水月澄懷雲泉寄興山與性寂谷與梵應觸境無硋息機是證道贊五朝威摧
衆妖黙垂慈蔭顯拒嘉招海自飃蕩山何動搖無思無慮匪斲匪雕食不兼味服不必備風雨如晦始終一致慧柯方秀法梀俄墜洞壑凄凉煙蘿憔悴人亡道存終不可諼上士陳願
大君流恩燈傳海裔塔聳雲根天衣拂石永耀松門
光啓三年七月日建 僧奐榮 刻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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