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四十二章經 』
智雲 (松廣寺講院 / 講主)
( 解 題 )
四十二章經은 禪家에서 遺敎經과 僞山警策과 더불어 佛祖三經이라고 일컬어진 경전으로 늘 독송되어 왔다. 이 경은 중국에 있어서의 최초의 한역 경전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후한시대인 1세기경에 洛陽의 백마사에서 迦葉摩騰과 竺法蘭이 함께 번역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이 경의 첫 머리에 보면 후한의 孝明帝(58--75재위)가 꿈속에서 金人이 날아와 그의 궁전에 내리는 것을 보고 신하를 大月支國으로 보내어 佛經을 얻어오게 하였는데, 이때 필사해 온 것이 이 경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본다면 이 경은 문헌상 중국에 들어온 최초의 경전이기도 하다.
本經은 평이간명한 불교입문서로서 널리 애독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경에는 약10여종의 異本이 있고, 異本은 크게 古型本(高麗․ 宋․元의 대장경 속에 있는 것)과 寶林傳本의 두 系統으로 분류되는 데, 후자는 宋代 이후에 유행한 여러 異本의 원류가 된다.
이 경전은 일반인을 위한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출가 수행자를 위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짤막짤막한 덕목들로 짜여져 있다. 대부분의 덕목들은 아함경을 비롯한 여러경전에서 추출한 것이나, 초기경전의 내용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따라서 자연히 초기 불교의 修行觀을 근간으로 해서 출가의 목적인 깨달음과 解脫에 이르게 함을 要旨로 하고 있다.
이 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모든 것 중에서 진리와 계합한 깨달음과 해탈이야말로 가장 크고 가장 밝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거기에 나아갈 것인가? 正見이다. 자기자신의 가장 밑바닥까지 놓치지 않고 返照해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야 말로 正見의 토대이다. 이를 통해서 습관적으로 지내고 있는 삶(愛欲, 名譽, 財色등등)에 대해서 냉철한 반성과 生老病死가 안고 있는 無自性의 自我가 막힘없이 열렸을 때 우리 앞에 깨달음과 涅槃은 성큼 다가온다.
正見은 무엇들로 반려를 삼는가? 慈悲, 忍辱, 懺悔, 精進, 布施, 善行 등등 많은 增上緣의 힘이 바로 그 반려들이다. 正見이 이들을 반려로 하고 있을 때 열반의 지름길에 서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經에서 無自性의 열림은 평온과 자애의 동아리임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第四十二章에서 밝혔듯이 觀이 自在하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인 열려 어우려진 세계의 삶이 펼쳐지게됨 음미하기 바란다.
이 經이 佛祖三經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애송되고 있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 경을 차분히 음미하며 읽어봄으로써 그 해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四十二章經 課標
《序分》
《正宗分》
<第一章> - (出家 沙門의 四果를 밝힌다.) ; 위없는 깨달음 - 출가 목적
<第二章> - (沙門의 解脫道를 밝힌다.) ; 걸림 없는 해탈
<第三章> - (愛著과 貪欲을 끊어 가는 沙門의 修行 生活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을 밝힌다.)
<第四章> - (모든 惡을 짓지말고 모든 善을 받들어 행함이 곧 열반으로 나아 가는 길임을 밝힌다.)
<第五章> - (허물을 懺悔하면 罪가 消滅함을 밝힌다.) ; 善은 열반에로 나아가는 지름길
<第六章> - (어떤 迫害라도 忍辱하여 성내거나 꾸짖지 말 것을 밝힌다.)
<第七章> - (위 第六章의 忍辱하는 본보기를 밝힌다.)
<第八章> - (어진이를 해치면 자신을 파멸로 이끎을 밝힌다.)
<第九章> - (진리를 깨닫고자 誓願을 세울 것을 밝힌다.)
<第十章> - (남이 진리를 베풂을 보고 그를 도와 같이 베풀고 기뻐하면 그 복덕이 무량함을 밝힌다.) : 발심수행 방법으로써의 보시
<第十一章> - (福田의 낫고 못함은 供養하는 者의 境地에 달렸음을 밝힌다.) : 회향
<第十二章> -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들어 수행하기를 권한다.) : 無知에 의한 스무 가지 장애
<第十三章> - (宿命과 至道는 마음을 닦으면 알 수 있음을 밝힌다.) : 모든 것중에 道와 契合하는 것이 가장 크고,
<第十四章> - (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第十五章> - (힘이 센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밝힌다.) 깨달음이 가장 밝다.
<第十六章> - (愛欲을 버리면 참된 도를 볼 수 있음을 밝힌다.)
<第十七章> - (無明은 滅하나 깨어 있는 마음은 不滅함을 밝힌다.) - 알아차림이 道를 얻게한다.
<第十八章> - (念과 行과 言과 修라는「相」이 사라졌을 때 깨닫는 것임을 밝힌다.)
<第十九章> - (관찰과 알아차림의 지속성에 의하여 깨달아짐을 밝힌다.) <第二十章> - (우리들의 몸에는 固定不滅의 「我」가 없음을 밝힌다.) - 출가 생활
<第二一章> - (명예를 구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밝힌다.)
<第二二章> - (財物과 色은 苦를 초래함을 밝힌다.)
<第二三章> - (애욕에 얽매인 범부와 그것을 벗어나 아라한에 대하여 밝힌다.) ��� 깨어있음을 흐리게 하는 요인
<第二四章> - (색욕이 수행에 가장 큰 장애 要素임을 밝힌다.)
<第二五章> - (愛欲의 禍을 밝힌다.) - (渴愛: 칼날에 묻은 꿀)
<第二六章> - (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第二七章> - (情欲과 邪見의 두 邊에 얽매이지 말고 수행할 것을 밝힌다.)
<第二八章> - (물들어 있는 마음을 믿지 말 것과 色의 禍를 피할 것을 밝힌다.)
<第二九章> - (바른 생각으로 여색을 관찰할 것을 밝힌다.) - 바른 견해를 세워야 한다.
<第三十章> - (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욕심으로 因한 害를 입지 말 것을 밝힌다.)
<第三一章> - (마음이 平靜을 찿으면 淫慾이 저절로 사라짐을 밝힌다.) <第三二章> - (사랑을 떠나면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짐을 밝힌다.)
<第三三章> - (精進하면 모든 魔를 분쇄하고 道를 얻음을 밝힌다.)
<第三四章> - (修行의 要諦는 兩極端에 치우침이 없는 中道에 있음을 밝힌다.)
<第三五章> - (마음을 오염시키는 번뇌를 버리면 心淸淨이 드러남을 밝힌다.)
<第三六章> - (佛法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진리와 만나는 인연이 소중함을 일깨운다.) - 정진과 그 방법
<第三七章> - (계율을 지키면 그대로 깨달음을 이루게 됨을 밝힌다.)
<第三八章>---(목숨의 無常함은 삶에 대한 覺醒을 일으키게 하여 진리로 나아가게 함을 밝힌다.)
<第三九章>---(모든 경전은 마땅히 믿고 따라야 할 것임을 밝힌다.)
<第四十章>---(수행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第四一章>---(번뇌에 대하여 持續的인 관찰이 이루어지면 苦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밝힌다.) ��� 있는 그대로 보라.
<第四二章> - (觀이 自在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됨을 밝힌다.)
《序分》
世尊成道已. 作是思惟. 離欲寂靜, 是最爲勝. 住大禪定,降諸魔道. 於鹿野苑中, 轉四諦法輪. 度憍陳如等五人而證道果. 復有比丘所說諸疑, 求佛進止. 世尊敎勅, 一一開悟. 合掌敬諾, 而順尊勅.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으신 후, 이렇게 思惟 하시었다. ������욕망을 버린 寂靜이 가장 수승하다������라고. 大禪定에 머물러 모든 마군의 道를 항복 받으신 다음, 녹야원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바퀴를 굴려,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를 제도하여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어떤 비구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에 대하여 의심이 남아 있어서 부처님께 나아감과 머무름에 관하여 다시 여쭘에,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경계할 바를 일러주어 하나하나 깨닫게 하시니, 그들은 합장 공경하고 삼가 승낙하여 世尊의 가르침을 따랐다.
《正宗分》
△ 正宗分의 全科目은 1)출가 목적과 2)출가 생활의 二段으로 되어 있다. 第一章과 第二章는 1)「출가 목적」, 그 이하의 章은 2)「출가 생활」로 分類된다.
第一章과 第二章는 위 없는 깨달음과 걸림없는 해탈에 이르게함을 요지로 하고 있는 출가의 목적을 설하고 있다.
<第一章> (出家 沙門의 四果를 밝힌다.)
佛言, 辭親出家, 識心達本, 解無爲法, 名曰沙門. 常行二百五十戒, 進止淸淨, 爲四眞道行, 成阿羅漢. 阿羅漢者, 能飛行變化, 曠劫壽命, 住動天地, 次爲阿那含, 阿那含者, 壽終靈神上十九天, 證阿羅漢. 次爲斯陀含, 斯陀含者, 一上一還, 卽得阿羅漢. 次爲須陀洹, 須陀洹者, 七死七生, 便證阿羅漢. 愛欲斷者, 如四肢斷, 不復用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출가한 사문은 마음 밖에 다른 존재가 없음을 알고 존재의 본질을 통달하여 무위법을 깨달아야 사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비구 二百五十戒를 행하여, 삿된 행위를 버리고 바른 길에 나아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네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을 수행하여 아라한을 이룬다.
阿羅漢은 능히 날아다니고 변화를 자유자재하게 행하며, 한량 없는 수명을 가지며, 그가 住하는 곳에는 천지가 진동한다. 다음은 阿那含인데, 阿那含이란 목숨이 다하면 그 신령스러운 마음은 十九天으로 올라가서 阿羅漢果를 증득한다. 다음은 斯陀含으로, 斯陀含은 한번 欲界의 六天에 오르고, 한번 인간계에 돌아와서 곧 阿羅漢이 된다. 다음은 須陀洹으로, 須陀洹은 일곱번 죽었다가 일곱번 인간계에 태어나서 곧 阿羅漢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愛欲을 끊은 사람은 마치 사지를 끊어 다시는 쓰지 않는 것과 같다.
<第二章> (沙門의 解脫道를 밝힌다.)
佛言, 出家沙門者, 斷欲去愛, 識自心源, 達佛深理, 悟無爲法. 內無所得, 外無所求. 心不繫道, 亦不結業. 無念無作, 非修非證. 不歷諸位, 而自崇最, 名之爲道.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출가한 사문은 욕망을 끊고 愛欲을 버려 자기 마음의 근원을 알고, 佛道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無爲法을 깨달아, 안으로 얻을 바도 없고, 밖으로 구할 바도 없으며, 마음은 道(眞理)에도 얽매이지 않고, 業도 짓지 않는다. 생각함도 없고 일부러 짓는 행위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證得할 것도 없다.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으니 이것을 「解脫道」라고 한다.
△ 第三章부터 第四十二章까지는 출가 생활을 설하고 있다. 「출가 생활」의 科目 중에서 다시 1)善은 열반에 나아가는 지름길. 2)발심수행 방법으로써의 보시회향. 3)無知에 의한 스무가지 장애. 4)모든 것 중에 道와 계합하는 것이 가장 크고 깨달음이 가장 밝다. 5)알아차림이 道를 얻게 한다. 6)깨어있음을 흐리게하는 요인. 7)바른 견해를 세워야 한다. 8)정진과 그 방법. 9)있는 그대로 보라. 등의 아홉으로 나누었는데, 第三章에서 第八章까지는 1)善은 열반에 나아가는 지름길의 가르침이다.
「善」에는 世間의 善과 出世間의 善이 있다. 世間의 善(相對善)은 世俗的인 努力, 不殺生, 不偸盜, 不妄語등이 생각된다. 출세간의 善(絶對善)에는 八正道, 六波羅蜜과 모든 戒와 律등 불교의 수행은 모두 이 가운데 포함된다. 여기서의 善의 의미는 세간과 출세간의 선 모두 포함된다. 즉 十善과 허물을 참회하는 것과 어떤 迫害라도 인욕한다든가 어진이들을 해치지않는 등은 모두 善이며, 동시에 이러한 행위가 그대로 열반에 나아가게하는 지름길이다.
<第三章> (愛著과 貪欲을 끊어 가는 沙門의 修行 生活의 방법을 밝힌다.)
佛言, 剃除鬚髮而爲沙門, 受道法者, 去世資財. 乞求取足, 日中一食, 樹下一宿, 愼勿再矣. 使人愚蔽者, 愛與欲也.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내 가르침을 배워 익히는 자는 세속의 온갖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빌어 얻는 것으로써 만족하라. 하루 한 끼만 먹고 나무 밑에서 하룻 밤을 지내되, 삼가 거듭 머물지 말라. 사람의 마음을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다.
<第四章> (모든 惡을 짓지말고 모든 善을 받들어 행함이 곧 열반으로 나아 가는길임을 밝힌다.)
佛言, 衆生以十事爲善. 亦以十事爲惡. 何等爲十. 身三, 口四, 意三. 身三者, 殺盜淫. 口四者, 兩舌,惡口,妄言,綺語. 意三者, 嫉,恚,癡. 如是十事, 不順聖道, 名十惡行. 是惡若止, 名十善行耳.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 가지 일로써 善하게 되기도 하고, 열가지 일로써 악하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열가지 일인가? 몸의 세 가지, 말의 네 가지, 생각의 세 가지이다.
몸의 세 가지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과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한 짓을 하는 일이다. 말의 네 가지란, 이간질과 악담과 거짓말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꾸며 하는 일이다. 생각의 세 가지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이치에 어두워 깨어있지 못한(알아차림이 없는) 어리석음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은 성스러운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지 않으므로, 열 가지 악한 행위라고 한다. 그러한 악한 일을 하지않고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면 열 가지 착한 일이 될 것이다.
<第五章> (허물을 懺悔하면 罪가 消滅함을 밝힌다.)
佛言, 人有衆過, 而不自悔, 頓息其心. 罪來赴身, 如水歸海, 漸成深廣. 若人有過, 自解知非, 改惡行善, 罪自消滅. 如病得汗, 漸有痊損耳.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허물을 그 마음에 머물게 하면 죄가 몸에 와 닿는 것이 마치 냇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고 넓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허물이 있다면 스스로 허물임을 잘 알아서 악함을 고쳐 착함을 행하면 죄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마치 병자가 땀을 내고 점차 건강이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第六章> (어떤 迫害라도 忍辱하여 성내거나 꾸짖지 말 것을 밝힌다.)
佛言, 人聞善, 故來擾亂者, 汝自禁息, 當無瞋責. 彼來惡者, 而自惡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善한 사람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서 귀찮게 굴더라도, 네가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마음을 쉬어 그에게 성내거나 꾸짖지 말라. 그가 와서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第七章> (위 第六章의 忍辱하는 본보기를 밝힌다.)
佛言, 有人聞吾守道, 行大仁慈, 故致罵佛. 佛黙不對, 罵止. 問曰, 子以禮從人, 其人不納, 禮歸子乎. 對曰, 歸矣. 佛言, 今子罵我, 我今不納. 子自持禍, 歸子身矣. 猶響應聲, 影之隨形. 終無免離, 愼勿爲惡.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내가 道을 지켜 큰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나를 꾸짖고 욕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대꾸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그쳤다. 내가 그에게 「당신이 禮物로써 다른 사람을 접대했는데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禮物은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게 되겠지요?」 라고 물었더니 「돌아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에게 욕을 하였으나 나는 지금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대 스스로 禍를 가지고 당신 자신에게 돌린 것이오.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고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마침내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디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라고������
<第八章> (어진이를 해치면 자신을 파멸로 이끔을 밝힌다.)
佛言, 惡人害賢者, 猶仰天而唾, 唾不至天, 還從己墮. 逆風揚塵, 塵不至彼, 還坌己身. 賢不可毁, 禍必滅己.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어진이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처럼, 침은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기 얼굴에 되돌아 떨어지고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뿌리면 먼지는 뿌린쪽으로 가지 않고 자기 몸에 되돌아 와 묻는 것과 같이 어진 사람은 해칠 수 없고 禍가 반드시 그 자신을 멸하고 만다.������
△ 第九章부터 第十一章까지는 「발심수행 방법으로써의 보시회향」을 설한다.
<第九章> (진리를 깨닫고자 誓願을 세울 것을 밝힌다.)
佛言, 博聞愛道, 道必難會. 守志奉道, 其道甚大.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널리 듣는 것으로써 道를 사랑한다면 道를 반드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도를 깨닫고자 하는 뜻을 굳게 지켜 道를 받들면 그 道를 깨침이 매우 클 것이다.������
<第十章> (남이 진리를 베품을 보고 그를 도와 같이 베풀고 기뻐하면 그 복덕이무량함을 밝힌다.)
佛言, 覩人施道, 助之歡喜, 得福甚大. 沙門問曰, 此福盡乎. 佛言, 譬如一炬之火, 數千百人, 各以炬來分取, 熟食除冥, 此炬如故. 福亦如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道를 베푸는 것을 보고 그를 도와 기뻐한다면 얻는 福은 아주 클 것이다.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러면 그 공덕은 다함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한개의 횃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불을 붙여 가지고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횃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 복덕도 이와같다」
<第十一章> 擧田較勝 (福田의 낫고 못함은 供養하는 者의 境地에 달렸음을 밝힌다.)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 無修, 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 백명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五戒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만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만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만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일억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십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천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분의 無念, 無住, 無修, 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 第十二章은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들어 닦기를 권한다.
<第十二章>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들어 닦기를 권한다.)
佛言, 人有二十難. 貧窮布施難. 豪貴學道難. 棄命必死難. 得覩佛經難. 生値佛世難. 忍色忍欲難. 見好不求難. 被辱不瞋難. 有勢不臨難. 觸事無心難. 廣學博究難. 除滅我慢難. 不輕未學難. 心行平等難. 不說是非難. 會善知識難. 見性學道難. 隨化度人難. 覩境不動難. 善解方便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면 보시하기 어렵다. 돈 많고 지위가 높으면 道를 배우기 어렵다. 목숨을 버려 반드시 죽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佛經를 얻어 보기 어렵고,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 색심과 욕심을 참기 어렵다. 좋은 것을 보고 구하지 않기 어렵다. 욕을 먹고 성내지 않기 어렵다. 권세를 가지고 군림하지(뽐내지) 않기 어렵다. 接하는 일마다 無心하기 어렵다. 널리 배워 두루 연구하기 어렵다. 아만을 버리기 어렵다. 무식한 사람을 깔보지(가볍게) 않기 어렵다. 마음과 행동을 평등하게 하기 어렵다.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다. 自性을 보아 道를 배우기 어렵다. 형편을 따라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를 당해도 흔들리지 않기 어렵다. 방편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 第十三章부터 第十五章까지는 「모든 것중에 道와 契合하는 것이 가장 크고 깨달음이 가장 밝음」을 설한다.
무엇을 깨달았다고 할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時節因緣이라는 변수가 작용한다. 과일이 익어서 때가 되면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時節因緣이란 時節이 到來하고, 因緣이 和合하는 機會를 말하는 것으로, <大般涅槃經>은 ������우유 가운데 酪이 있듯이 衆生의 佛性도 역시 그렇다. 불성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時節의 형색을 관찰하라.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일체중생에 다 불성이 있어서 진실로 허망하지 않다고 설한다.������ 라고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나무가 봄에 봄기운을 만났을 때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예컨대, 향엄스님이 돌에 맞은 대나무 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음을 얻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같은 소리에라 할지라도 누구나가 다 깨닫는 것은 아니다. 인연이 익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마치 익지 않은 과일이 떨어지지 않듯이. 그러므로 <碧巖錄>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즉, ������禪家의 道流여 佛性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時節因緣을 觀하라. 이러한 것을 敎外로 別傳하고 單으로 心印을 傳하며 바로 人心을 가리켜 見性하여 成佛한다고 말한다.������ 라고 하였다. 깨달음은 時節因緣에 依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第十三章> 會道知命 (宿命과 至道는 마음을 닦으면 알 수 있음을 밝힌다.)
沙門問佛, 以何因緣, 得知宿命, 會其至道. 佛言, 淨心守志, 可會至道. 譬如磨鏡, 垢去明存. 斷欲無求, 當得宿命.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인연으로 宿命을 알 수 있으며, 지극한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發하는) 뜻을 굳게 지키면 지극한 道를 알 수 있다. 마치 거울을 닦아 먼지가 없어지면 밝아지는 것과 같이, 욕심을 끊어 구하는 것이 없으면 마땅히 숙명을 알 수 있다.������
<第十四章> 眞修合道 (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沙門問佛, 何者爲善, 何者最大. 佛言行道守眞者善, 志與道合者大.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善이며 어떤 것이 가장 큰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도를 수행하여 참다움을 지키는 것이 善이요, (깨닫고자 하는) 뜻과 道가 契合하는 것이 크다.������
<第十五章> 忍智力明 (힘이 센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밝힌다.)
沙門問佛, 何者多力, 何者最明. 佛言, 忍辱多力. 不懷惡故, 兼加安健, 忍者無惡, 必爲人尊. 心垢滅盡, 淨無瑕穢, 是爲最明, 未有天地, 逮於今日, 十方所有, 無有不見, 無有不知, 無有不聞, 得一切智, 可謂明矣.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힘센 것이며, 어떤 것이 가장 밝은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인욕이 힘센 것이다. 악한 마음을 품지 않게 되는 까닭에, 편안함과 씩씩함을 더하게 된다. 또 참는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남의 존경을 받게 된다.
마음의 때가 다 없어져서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는 것이 가장 밝은 것이다. 아직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방세계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함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듣지 못하는 것이 없는 一切智를 얻은 것이 가장 밝은 것이다.������
△ 第十六章부터 第二十章까지는 「알아차림에 의해서 道를 얻게됨」을 밝힌다.
과학자들은 존재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 가속기를 사용하고 전자현미경을 동원한다. 그러나 禪修行은 이러한 과학적 도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부모가 준 두 눈만으로도 충분하다. 과학자는 과학자자신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오로지 몸과 마음 밖의 대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설사 과학적 관찰의 대상이 無常이고 無我, 空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관찰자의 몸과 마음속에 無時로 일어나는 苦를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관찰의 대상으로 하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오로지 자신만을 관찰의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여실히 알았을 때 몸으로 체험하여 얻는 것이므로 「體得」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과학에는 이런 것이 없다.
관찰은 어디까지나 몸과 마음의 無常, 苦, 無我, 또는 空한 본성을 보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道를 장애하는 愛欲을 물리치고 不滅의 자아가 있다는 환상을 일으켜 苦를 야기시키는 我慢, 我見, 我愛, 我癡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는 데에 있다.
수행의 요결은 보는 主觀과 보이는 客觀과의 사이에 파생되는 문제 해결이다. 주관과 객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모든 사건은 발생한다. 이러한 주객간의 문제 는 오로지 자신를 비쳐보는(回光反照) 알아차림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
<第十六章> 斷欲見道 (愛欲을 버리면 참된 도를 볼 수 있음을 밝힌다.)
佛言, 人懷愛欲, 不見道者. 譬如澄水, 致手攪之, 衆人共臨, 無有覩其影者. 人以愛欲交錯, 心中濁興, 故不見道. 汝等沙門, 當捨愛欲. 愛欲垢盡, 道可見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애욕을 품어 道를 보지 못하는 것은 마치 맑은 물을 손으로 휘저어 놓으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물에 비치더라도 그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애욕으로써 뒤섞여 엇갈리면 마음 가운데 탁함이 일어나기 때문에 道를 보지 못한다. 너희들 沙門은 마땅히 애욕을 버려야 된다. 애욕의 더러움을 버리면 도를 볼 수 있다.������
<第十七章> (無明은 滅하나 깨어 있는 마음은 不滅함을 밝힌다.)
佛言, 夫見道者, 譬如持炬, 入冥室中, 其冥卽滅, 而明獨存. 學道見諦, 無明卽滅, 而明常存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본다는 것은 마치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면 그 어두움이 곧 사라지고 밝음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서 진리를 보면 無明은 곧 사라지고 밝음만이 항상 있을 것이다.������
<第十八章> (念과 行과 言과 修라는 「相」이 사라졌을 때 깨닫는 것임을 밝힌다.)
佛言, 吾法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言語道斷, 非物所拘. 差之毫釐, 失之須臾.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내 法은 無念의 念을 念하고, 無行의 行을 行하고, 無言의 言을 말하며, 無修의 修를 닦는다. 깨달은 者는 가깝고, 미혹한 者는 멀 뿐이다.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物에 매이는 바가 없다.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순간에 잃어버린다.������
<第十九章> (관찰과 알아차림의 지속성에 의하여 깨달음이 이루어짐을 밝힌다.)
佛言. 觀天地, 念非常. 觀世界, 念非常. 觀靈覺, 卽菩提. 如是知識, 得道疾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天地를 觀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세계를 觀하여 역시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며, 신령스럽게 깨어있는 마음을 觀하여 깨닫는 것이 곧 보리다. 이와같이 알면 道를 빨리 얻는다.������
<第二十章> (우리들의 몸에는 固定不滅의 「我」가 없음을 밝힌다.)
佛言. 當念身中四大, 各自有名, 都無我者. 我旣都無, 其如幻耳.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땅히 몸 가운데 四大가 있어 각기 스스로 이름은 있으나 四大 어디에도 「我라는 것」은 없다라고 알아차려야 된다. 我가 이미 어디에도 없어서, 그것은 마치 幻과 같을 뿐이다.������
△ 第二十一章부터 第二十六章까지는 「깨어있음을 흐리게 하는 要因」을 설한다.
<第二一章> (명예를 구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밝힌다.)
佛言. 人隨情欲, 求於聲名. 聲名顯著, 身已故矣. 貪世常名而不學道, 枉功勞形. 譬如燒香, 雖人聞香, 香之燼矣. 危身之火而在其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정욕을 좇아 名譽를 구한다. 그러나 명예가 드러날만 하면 몸은 이미 죽고 만다. 세상의 명예를 탐하면서 道를 배우지 아니하고 헛되이 힘만 들이고 몸을 피로하게 한다. 마치 향을 사루어서 사람들이 비록 향내를 맡으나 향은 이미 재가 되어버림과 같다. 이와 같이 몸을 (태워버릴 것을) 위협하는 불이 그(名譽) 뒤에 있는 것이다.������
<第二二章> (財物과 色은 苦를 초래함을 밝힌다.)
佛言. 財色於人, 人之不捨. 譬如刀刃有蜜, 不足一餐之美. 小兒舐之, 則有割舌之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대함에 있어 그것을 집착하여 버리지 못한다. 마치 칼 끝에 꿀이 묻어 있는 것과 같아, 한 번 맛 보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데 어린아이들이 그것을 핥으면 곧 혀를 베일 염려가 있는 것과 같다.������
<第二三章> (애욕에 얽매인 범부와 그것을 벗어난 아라한에 대하여 밝힌다.)
佛言. 人繫於妻子舍宅, 甚於牢獄. 牢獄有散釋之期. 妻子無遠離之念. 情愛於色豈憚驅馳. 雖有虎口之患, 心存甘伏. 投泥自溺, 故曰 凡夫. 透得此門, 出塵羅漢.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처자나 집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심하다. 감옥은 풀려날 기한이 있으나 처자는 멀리 떠날 생각조차 없다. 어찌 情愛가 色을 싫어하여 달아나겠는가? 비록 호랑이 아가리에 빠질 근심이 있더라도 달게 엎드려서 몸을 스스로 진흙에 던져 빠져든다. 그러므로 범부라고 하고, 그 문을 뚫고 나오면 티끌 번뇌를 벗어난 아라한이라고 한다.������
<第二四章> (색욕이 수행의 가장 큰 장애 要素임을 밝힌다.)
佛言. 愛欲莫甚於色. 色之爲欲, 其大無外. 賴有一矣. 若使二同, 普天之人, 無能爲道者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 중에서는 색보다 심한 것이 없다. 색에 대한 욕망은 그 크기가 한정이 없다. 다행히 그러한 것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와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이 능히 道를 닦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第二五章> (愛欲의 禍을 밝힌다.)
佛言. 愛欲之人, 猶如執炬. 逆風而行, 必有燒手之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잡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된다.
<第二六章> (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天神獻玉女於佛. 欲壞佛意. 佛言. 革囊衆穢, 爾來何爲. 去, 吾不用. 天神愈敬, 因問道意. 佛爲解說. 卽得須陀洹果.
������天神이 玉女를 부처님에게 바쳐서 부처님의 뜻을 꺾으려고 할 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죽 주머니 속에 온갖 더러움을 가진 이여! 너는 무엇하려고 왔는가? 물러가라. 나에게는 필요 없다.」 천신은 더욱 공경하여 道의 뜻을 물었다.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解說하여 주었더니 수다원果를 얻었다.������
△ 第二十七章부터 第三十二章까지는 「바른 견해를 세워야함」을 설한다.
외부로부터 법문을 받아들이므로 해서(聞) 정견은 선다(立). 부처님이나 菩薩, 祖師의 敎說을 듣는 것에 의해서 正見이 생긴다. 말하자면 스승의 正見을 말한다. 그러나 스승이 없이도 正見을 세울 수 있다. 現象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無情說法과 같은 경우이다. 이때에는 現象이 스승이 되어서 三法印등의 법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現象에게 그 법문을 듣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소한 三法印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이 바른 修行을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로 正見이고 우리는 부처님의 正見에 의지하여 수행의 바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삽법인등의 법문은 生死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情欲과 邪見을 가려낼 수 있고 색의 禍가 무서움을 감지할 수 있고 여색을 보더라도 바른 견해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고, 生死大事를 해결하기 위해 自心의 觀察을 게을리하지 않는 精進力이 생기기 때문이다.
<第二七章> (情欲과 邪見의 두 邊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하면 道를 깨칠 수 있음을 밝힌다.)
佛言. 夫爲道者. 猶木在水. 尋流而行. 不觸兩岸. 不爲人取. 不爲鬼神所遮. 不爲洄流所住. 亦不腐敗. 吾保此木. 決定入海. 學道之人. 不爲情欲所惑. 不爲衆邪所嬈. 精進無爲. 吾保此人. 必得道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 사람은 마치 나무둥치가 물가운데에 있어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양쪽 기슭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이 건져 가지도 않고, 귀신에게 막히는 바가 되지도 않고, 소용돌이에 빠지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는다면, 나는 이 나무둥치가 결정코 바다에 흘러 들어가리라고 보장할 것이다. 道를 배우는 사람도 정욕에 미혹되지 않고, 온갖 삿된 見解에도 흔들리지 않고, 無爲에 精進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道를 깨달을 수 있음을 보장한다.������
<第二八章> (물들어 있는 마음을 믿지 말 것과 色의 禍를 피할 것을 밝힌다.)
佛言. 愼勿信汝意. 汝意不可信. 愼勿與色會. 色會卽禍生. 得阿羅漢已. 乃可信汝意.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너의 뜻을 믿지 말라. 너의 뜻은 믿을 수 없다. 삼가 色과 만나지 말라. 색과 만나면 화를 초래할 것이다. 아라한과를 얻어야만이 너의 뜻을 믿을 수 있다.������
<第二九章> (바른 생각으로 여색을 관찰할 것을 밝힌다.)
佛言. 愼勿視女色. 亦莫共言語. 若與語者. 正心思念. 我爲沙門, 處於濁世. 當如蓮華, 不爲泥汚. 想其老者如母. 長者如姉. 少者如妹. 稚者如子. 生度脫心. 息滅惡念.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여색을 보지 말라. 또한 함께 말하지 말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되면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되, 「나는 사문이 되어서 탁한 세상에 處하여 있으나, 마땅히 연꽃처럼,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라. 나이 많은 여인은 어머니 같이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여인은 누님 같이 생각하며, 나이가 적은 이는 누이동생처럼 생각하며, 어린이는 딸처럼 생각하여 제도할 마음을 내면 악한 생각은 사라진다.������
<第三十章> (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해를 입지 말 것을 밝힌다.)
佛言. 夫爲道者, 如被乾草, 火來須避. 道人見欲, 必當遠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마른 풀을 덮어썼을 때, 불이 오면 모름지기 피해야 하는 것과 같다. 道 닦는 사람은 欲心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第三一章> (마음이 平靜을 찿으면 淫慾이 저절로 사라짐을 밝힌다.)
佛言. 有人患淫不止, 欲自斷陰. 佛謂之曰. 若斷其陰, 不如斷心. 心如功曹. 功曹若止, 從者都息. 邪心不止, 斷陰何益. 佛爲說偈. 欲生於汝意. 意以思想生. 二心各寂靜. 非色亦非行. 佛言. 此偈是迦葉佛說.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음욕이 그치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자기의 생식기를 끊고자 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일렀다. 「그 생식기를 끊는 것은 그 마음을 끊는 것만 못하다. 마음은 마치 功曹와 같아서 만일 功曹가 (일을) 멈추면 그를 따르는 사람도 모두 쉬게되지만 삿된 마음을 그치지 않으면 생식기를 끊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부처님은 偈를 설하셨다. 「욕심은 너의 뜻에서 생기고 뜻은 思와 想에서 생기니, 두 마음이 고요해지면 모든 色은 色이 아니요, 모든 行은 行이 아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이偈頌은 가섭불의 말씀이다.������라고 하셨다.
<第三二章> (사랑을 떠나면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짐을 밝힌다.)
佛言. 人從愛欲. 生憂, 從憂生怖. 若離於愛, 何憂何怖.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愛欲으로 부터 근심이 생기고, 근심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만일 사랑을 떠나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 第三十三章부터 第四十章까지는 「정진과 그 방법」을 제시한다.
<第三三章>(精進하면 모든 마구니를 분쇄하고 道를 얻음을 밝힌다.)
佛言. 夫爲道者. 譬如一人與萬人戰. 挂鎧出門. 意或怯弱. 或半路而退. 或格鬪而死. 或得勝而還 .沙門學道. 應當堅持其心. 精進勇銳, 不畏前境. 破滅衆魔, 而得道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 닦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이 만 사람과 싸울 적에 갑옷을 입고 문을 나서자 마음이 혹 겁약해 지기도 하며, 혹 반쯤 나아가다 물러나기도 하며, 혹은 맞붙어 싸우다가 죽기도 하며, 혹은 이기고 돌아 오는 것과 같다. 사문이 道를 배울 때는 마땅히 그 마음을 굳게 가져서 용감하게 나아가며, 앞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모든 악마를 粉碎하고 道果를 얻는다.������
<第三四章> (修行의 要諦는 兩極端에 치우침이 없는 中道에 있음을 밝힌다.)
沙門夜誦迦葉佛遺敎經. 其聲悲緊, 思悔欲退. 佛問之曰. 汝昔在家, 曾爲何業. 對曰. 愛彈琴. 佛言. 弦緩如何. 對曰. 不鳴矣. 弦急如何. 對曰. 聲絶矣. 急緩得中如何. 對曰. 諸音普矣. 佛言. 沙門學道亦然.心若調適, 道可得矣. 於道若暴, 暴卽身疲. 其身若疲. 意卽生惱. 意若生惱, 行卽退矣. 其行旣退, 罪必加矣. 但淸淨安樂, 道不失矣.
沙門이 밤에 가섭불의 「遺敎經」을 독송하는데 그 독송 소리가 슬프고 긴박하였으며 후회하는 마음을 내어 (세속으로) 되돌아 가고자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그에게 묻기를 「너는 옛날 在家에 있을 때, 일찌기 무엇을 業으로 하였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줄을 늦추면 어떻던가?」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줄을 아주 팽팽하게 조이면 어떻던가?」 「소리가 끊어집니다.」 「줄의 늦춤과 조임이 알맞으면 어떻던가?」 「모든 소리가 두루 고릅니다.」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사문이 道를 배우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마음이 만약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道에 대하여 너무 급하게 마음을 쓰면 몸이 피로하고 그 몸이 피로 하면 마음이 곧 괴로울 것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수행이 곧 뒷걸음을 할 것이고 그 수행이 이미 뒷걸음을 한다면 반드시 罪만 더해 갈 것이다. 단지 마음과 몸이 깨끗하고 편안해야만이 道를 잃지 않는다.」
<第三五章> (마음을 오염시키는 번뇌를 버리면 心淸淨이 드러남을 밝힌다.)
佛言. 如人鍛鐵, 去滓成器, 器卽精好. 學道之人, 去心垢染, 行卽淸淨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치 사람이 쇠를 단련할 때에 (쇠에 섞인) 찌꺼기를 제거하고 器具를 만들면 그릇이 정밀하고 좋게 되듯이, 道를 배우는 사람도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면 행실이 청정해질 것이다.������
<第三六章> (佛法 만나기 어려운 만큼 진리와 만나는 인연이 소중함을 일깨운다.)
佛言. 人離惡道, 得爲人難. 旣得爲人, 去女卽男難. 旣得爲男, 六根完具難. 六根旣具, 生中國難. 旣生中國, 値佛世難. 旣値佛世, 遇道者難. 旣得遇道, 興信心難. 旣興信心, 發菩提心難. 旣發菩提心, 無修無證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惡道를 떠나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이미 사람이 되었어도 여자가 아닌 남자되기 어려우며, 이미 남자가 되었어도 六根을 완전히 갖추기가 어렵고, 육근을 갖추었어도 중국에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이미 중국에 태어났어도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려우며, 이미 부처님의 세상을 만났어도 道人을 만나기 어렵고, 이미 도인을 만났어도 신심을 일으키기 어려우며, 이미 信心을 일으켰어도 보리심을 발하기 어렵고, 이미 보리심을 발하였어도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음을 통달하기 어렵다.
<第三七章> (계율을 지키면 그대로 깨달음을 이루게 됨을 밝힌다.)
佛言. 佛子離吾數千里, 憶念吾戒, 必得道果. 在吾左右, 雖常見吾, 不順吾戒, 終不得道.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佛子가 내게서 數千里를 떠나 있더라도 나의 戒律을 항상 기억하면 반드시 道果(깨달음)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나의 左右에 있으면서 항상 나를 보더라도 나의 戒를 따르지 않는 다면 마침내 道를 얻지 못할 것이다.������
<第三八章> (목숨의 無常함은 삶에 대한 覺醒을 일으키게 하여 진리를 알게함을 밝힌다.)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 數日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 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 呼吸間. 佛言. 善哉. 子知道矣.
부처님이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은 얼마나한 사이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슴은 얼마나한 사이에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목숨은 얼마나한 동안에 있느냐?」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그대는 도를 안다.」
<第三九章> (모든 경전을 마땅히 믿고 따라야 할 것임을 밝힌다.)
佛言. 學佛道者, 佛所言說, 皆應信順. 譬如食蜜, 中邊皆甛. 吾經亦爾.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불도를 배우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마땅히 모두 믿고 따라야 한다. 마치 꿀을 먹으면 한 가운데나 가장자리가 모두 달콤한 것처럼, 내가 설한 경전도 또한 이와같다.������
<第四十章> (수행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佛言. 沙門行道, 無如磨牛. 身雖行道, 心道不行. 心道若行, 何用行道.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沙門이 道를 行할 때, 마치 磨牛와 같아서는 안된다. 몸은 비록 道를 行하나 마음은 道를 行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마음에서 道를 行할 것 같으면, 무슨 道를 달리 (몸으로) 行할 것이 있겠는가?������
△ 第四十一章부터 第四十二章까지는 「있는 그대로 보라」라고 설한다.
<第四一章> (번뇌에 대하여 관찰의 持續性이 이루어지면 苦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밝힌다.)
佛言. 夫爲道者. 如牛負重, 行深泥中. 疲極不敢左右顧視. 出離淤泥, 乃可蘇息. 沙門當觀情欲, 甚於淤泥. 直心念道, 可免苦矣.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다는 것은 마치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깊은 진흙 속을 가는 것과 같다. 피로가 극에 달하여 감히 좌우를 돌아 보지도 못하다가 진흙길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는 것과 같이, 沙門도 마땅히 情欲이 진흙보다 甚하다는 것을 관찰하여 곧은 마음으로 항상 道를 마음속에 두어 잊지 말아야만 (人生)苦를 벗어날 수 있다.������
<第四二章> (觀이 自在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됨을 밝힌다.)
佛言. 吾視王候之位, 如過隙塵. 視金玉之寶, 如瓦礫. 視紈素之服, 如敝帛. 視大千界, 如一訶子. 視阿耨池水, 如塗足油. 視方便門, 如化寶聚. 視無上乘, 如夢金帛. 視佛道, 如眼前華. 視禪定, 如須彌柱. 視涅槃, 如晝夕寤. 視倒正, 如六龍舞. 視平等, 如一眞地. 視興化, 如四時木.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왕후의 지위를 문틈으로 지나가는 먼지 같이 보고, 금옥의 보배를 마치 기와와 조약돌 같이 보며, 희고 고운 명주옷을 빛이 바래고 헤진 비단옷 같이 보며, 大千世界를 마치 한알의 작은 겨자씨 같이 보며, 阿욕池의 물을 마치 발에 바르는 기름 같이 보며, 方便門을 마치 幻化로 이루어진 보물무더기처럼 보며, 無上乘을 마치 꿈속의 금이나 비단같이 보며, 佛道를 마치 눈앞의 꽃과 같이 보며, 禪定을 마치 수미산의 기둥 같이 보며, 涅槃을 마치 아침 저녁으로 깨어 있는 것 같이 보며, 倒正을 마치 六龍이 춤추는 것 같이 보며, 平等을 마치 一眞地와 같이 보며, 敎化를 일으킴을 마치 四時의 나무처럼 본다.������
'<♣ 학술자료 ♣> > 경전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修 心 訣 (0) | 2018.07.15 |
---|---|
[스크랩] 진언(眞言)-1. 기능과 원리, 2. 진언의 기능, 3. 진언수행 방법 (0) | 2013.08.30 |
白花道場發願文略解 / 白花道場發願文 (0) | 2012.07.06 |
《 人有二十難 》 - 『四十二章經』<第十二章> (0) | 2012.05.01 |
『千手經』「神妙長句大陀羅尼」念誦의 方法과 功德 (0) | 2011.08.23 |
永明延壽禪師 『萬善同歸集』 : <中道頌> (0) | 2011.08.23 |
東師列傳 第三四 <懶庵講師傳> (0) | 2010.12.29 |
★한국불교문화종합시스템★ <한국불교전서><한글대장경><불교사전> (0) | 2010.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