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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卽佛 - 청화선사 - 物質의 分析ㆍ析空觀

화엄행 2011. 10. 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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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즉불(六卽佛)

육즉불(六卽佛)육즉불에는 ① 리즉불(理卽佛) ② 명자즉불(名字卽佛)

③ 관행즉불(觀行卽佛) ④ 상사즉불(相似卽佛) ⑤ 분진즉불(分眞卽佛)

⑥ 구경즉불(究竟卽佛) 을 말함.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천태지의(天台智顗) 선사, 선사의 천태 철학이 불교 철학으로는 제일 높은 철학입니다. 때문에 적어도 불교학도면 꼭 천태학(天台學)을 거쳐야 한다는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참선 법문(法門)이나, 무슨 법문이나 하나의 체계로 공부할 때는 천태 학문이 필요합니다. 천태스님의 여러 저서 가운데서 마하지관(摩訶止觀) 이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하나의 위대한 체계적인 작업입니다. 이것은 지관법에 있는 하나의 법문입니다.


육즉불(六卽佛)이라. 여섯 단계가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맨 먼저 리즉불(理卽佛)이라. 원리로 봐서 부처란 말입니다.


다음이 명자즉불(名字卽佛)이라. 다만 이름만 부처입니다. 부처란 이름만 좀 들었지 부처의 옆에는 조금도 가지 못했단 말입니다.

우리가 불교인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않고 그냥 지내면 이름만 좀 들었을 뿐이지 조금도 결심도 못하고 부처님께 한 걸음도 못 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관행즉불(觀行卽佛)이라. 실지로 우리가 닦아서 차근차근 부처가 돼 간단 말입니다. 부처란 생각도 하고 부처의 경계도 관찰하고 염불도 하고 화두도 참구하고 그렇게 공부를 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관행즉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애써 공부하시는 사람들은 세 번째 단계인 관행즉불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부가 좀 익혀져서 네 번째 가서 상사즉불(相似卽佛)이라. 거의 닮아 있는 부처란 뜻입니다. 부처가 확실히는 못되었지만 거의 비슷한 부처란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신통도 못하고 하지만 해석하는 데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마음이 바꿔지고 또 도리에 대해서 밝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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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수행(修行)의 조도(助道)  

제3절 현상(現象)과 본체(本體)  

4. 물질(物質)의 분석(分析)ㆍ석공관(析空觀)

 

 

    



불교에서 구사론 등 근본 론장(論藏) 가운데 석공관(析空觀)이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공()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니까 색(물질)을 분석하는 방편을 써서 공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물체를 분석하여 우선 극유진(隙遊塵)이라 하는데, 날씨가 좋을 때 문틈으로 태양 광선이 비춰오는 것을 보면 그 광선 속에 헤아릴 수 없는 티끌이 떠 놀고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정도의 작은 것을 말합니다. 현대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물질의 성분(成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미세한 것이 우모진(牛毛塵)입니다. 마치 소터럭 끄트머리같은 그 정도로 작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그와 꼭 같다는 것이 아니고 옛날 사람이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적인 술어로는 분자(分子) 정도가 되고 더 작은 것은 양모진(羊毛塵)으로 양털 끄트머리 정도로 눈에 안 보이는 원소(元素)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 토모진(兎毛塵)으로 토끼털 끄트머리 정도로 전자(電子) 정도에 비유됩니다. 그 다음은 수진(水塵)으로 양성자(陽性子), 중성자(中性子) 정도이고, 앞에서 말한 금진(金塵)은 원자핵(原子核)의 본질 (本質)을 의미합니다.


이런 불교적인 분석은 옛날에 도인들이 중생들이 물질에 대해서 너무 집착을 하니까 '분석하면 모든 존재들이 다 허망하게 비어버린다'고 하기 위한 법문을 시설하여 이른바 석공관(析空觀)이라, 물질을 분석해서 공으로 돌아가는 관법(觀法)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금진(金塵)은 미()로 구성되고, 미는 극미(極微)로 구성되고, 극미는 인허(隣虛)라는 공간성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기운으로 구성되었다고 분석을 했습니다.

따라서, 금진은 핵의 본질이지요. 미는 식의 알갱이〔識粒〕요, 또는 극미는 색구경(色究竟) 즉 색의 가장 끄트머리고 인허(隣虛)는 염심근(染心根)이라, 우리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 가장 시초인 것입니다.


물체에서 수진(水塵)까지는, 욕계에 있는 티끌, 욕계진(浴界塵)이라 하고 또 금진은 광명체 즉 광명이 본질이기 때문에 이것은 색계진(色界塵)이라 하고 또 우리 의식의 헤아림의 흔적들은 무색계진(無色界塵)이니까 내나 우리의 식()도 물질화 될 수가 있고 물질도 결국은 식이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물질의 구조같은 것은 대강 살펴본 셈입니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지풍 4대(四大)가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순수한 우주의 기운인 금진(金塵)이 좌선(左旋) 곧 좌편으로 진동하면 수진(水塵)이 되고 우편으로 진동하면 화진(火塵)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진은 현대적으로 대비해서 말하면 전자(電子)고 수진은 이른바 양자(陽子)가 되는 것입니다. 원자핵 즉 양성자, 중성자는 불교에서 말하면 수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라든가 또는 이 양성자 중성자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원리를 현대 물리학자들은 거의 비슷하게 말을 합니다. 가사 라듐(radium)을 분석하면 전자의 흐름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양성자의 흐름은 왼쪽으로 굽어지고 또는 감마 (ganlma)선은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렴풋이 나마 현대 물리학에서도 좌선(左旋)과 우선(右旋)의 도리를 말합니다.

불교 가르침 가운데서 금진이란 말은 원래 있으나 좌선진, 우선진이나 수진은 양자와 같고 화진은 전자와 같다는 이런 말씀을 한 것은 금타 스님이 처음입니다. 현대에 태어난 분이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과 대비 회통(會通)을 시킨다는 의미에서 필수적으로 밝혀야겠지요.


아무튼, 우리 마음의 싫어하는 기운은 금진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전자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마음은 그 반대로 금진을 왼쪽으로 돌려서 양성자 등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주에너지인 금진(金塵)은 우뢰 심리 여하에 따라서 전자화(電子化)되고 양자화(陽子化)되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저명한 의학자들 말도 성을 내면 몸에 해로운 요소인 아드레날린(adrenalin)이 더 증가되고, 웃고 기분 좋으면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 엔돌핀(endorphines)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모두가 다 부처님 원리에서 본다면 수긍이 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겁 초기(成劫 初期)에 광음천(光音天)이라든가 더 위의 무색계(無色界)에 있는 중생들이 좋다 궂다 하는 분별이 시초 동력(動力)이 되는 이른바 중생들의 공업력(共業力)이 쌓이고 모이니까 전자가 되고 양자가 되어 우주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들이 생명이니까 의당 역동성(力動性)이 있어야겠지요. 따라서 양자인 수진은 같은 성질끼리는 서로 이끌고 또 다른 성질과는 서로 배척하는데 수진 즉 양자에 있어서 같은 성질끼리 이끈 것은 수()라고 하고 다른 성질을 배척하 것은 지()라고 합니다. 가사, 중성자와 양성자가 서로 어우러져서 원자핵이 되는 것도 서로 이끌어서 된 것입니다. 또 우편으로 도는 금진인 화진(火塵) 즉 전자는 성질이 수진(水塵)과는 반대로 동성끼리는 서로 배척하고 또는 이성끼리는 서로 이끄는데 동성끼리 서로 배척하는 것은 화()라고 하고 이성끼리 이끄는 것은 풍() 이라고 합니다.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이렇게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수화풍 사대가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도 역시 금타 스님이 처음으로 발설을 했습니다. 옛날에야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물질이란 그 근본이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불교인들이 꼭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세속인인 물리학자들이 푸는 우주의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마만치 불교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들이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앞서서 이끌어야 할 과제가 현대 불교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물질의 근원이 본래 공()하다는 도리를 분별 지혜인 간혜(乾慧)로라도 알고 있으면 우리들의 상()을 여의는 데도 크게 조도(助道)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