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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韓甲族]★ - 光山金氏자료

화엄행 2010. 9. 21. 02:28

http://www.kwangsankim.or.kr/a004/a07.htm

 

 

삼한갑족[三韓甲族]

 

 

 

[(1)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서의 조건(條件)]

 


삼한(三韓)갑족이라는 신라, 고려, 조선 3조에 걸쳐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역사 전(全) 시대에 걸쳐 학문(學問) 및 관위(官

 

位)에서 드러난 조상을 둔 집안이 아니면 감히 삼한의 갑족, 벌족(閥族)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우리 광김(光金)은 신라 시대에는 대보공(大輔公) 휘 알지(閼智) 후손으로 신라

 

역대 56왕 중 38왕을 배출한 왕족(王族)이었고, 전남 광주 지역으로 은거하신

 

조공이 왕자였으며, 2세(世) 휘 식(軾)께서 신라 관위 상신급(相臣級) 각각(角

 

干)이었다.

나아가 고려조에 이르러서도 문안공 휘 양감(良鑑)께서 동방 이학(理學)의 종사

 

(宗師)로서 공맹(孔孟)의 사학(斯學)을 우리 나라에 처음 도입하였을 뿐 아니라,

 

아래에서 보듯이 증직(贈職)을 포함한 정승 상신(相臣) 10여 분을 배출한 대단

 

한 명문거족이었다.


 ※광김의 고려조(高麗朝) 상신(相臣) 

 

 1. 2世 휘 식(軾)…각간(角干)은 신라의 1품 관직인데, 보

 

첩(譜牒)에서 평장지질(平章之秩)이라 하였음.

 

 2. 3世 휘 길(佶)…삼중대광사공(三重大匡司空)으로 상신

 


 3. 4世 휘 준(峻)…삼중대광좌복야(三重大匡左僕射)로 상

 

신급
 

4. 5世 휘 책(策)…좌복야(左僕射) 한림학사(翰林學士) 평

 

장사(平章事), 시호(諡號) 문정(文貞)
 

 

5. 6世 휘 정준(廷俊)…수사도(守司徒) 문하시랑평장사
 

6. 7世 휘 양감(良鑑)…중서시랑평장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상서호부사(判 尙書戶部事), 수태보(守太保) 문하시중,

 

감수국사(監修國史), 시호 문안(文安)
 

7. 8世 휘 약온(若溫)…평장사, 시호 사정(思靖)

 

8. 8世 휘 의원(義元)…고려 문종조에 등과하여 호부상서

 

(戶部尙書) 삼사사(三司使), 시호 충정(忠貞)

 

9. 13世 휘 대린(大鱗)…증문하시랑평장사 판병부사(判兵

 

部事)

 

 

10. 13世 휘 경량(鏡亮)…증(贈)문하평장사

 

11. 15世 휘 사형(士亨)…참지정사(參知政事)

 

12. 15세 휘 태현(台鉉)…삼중대광문하시중, 수문관대제학

 

(修文館大提學),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시호 문정(文貞)

 

13. 15세 휘 심(深)…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 도첨의

 

(都僉議) 우정승(右政丞), 판총부(判摠部), 사헌부사(司憲

 

府事), 상호군(上護軍), 시호 충숙(忠肅)

 

14. 15세 휘 유(流)…문하시중

 

15. 16세 휘 석견(石堅)…밀직부사(密直副使), 광정대부(匡

 

靖大夫) 삼사우사(三司右使) 상호군(上護軍), 사재시사(司

 

宰寺事) 도첨의(都僉 議) 우정승(右政丞)
 

 

참고 : 평장리(平章里)의 유허비각(遺墟碑閣)의 주련

 

(珠聯)에서 보듯이 광김의 고려조 평장사는 모두 8분

 

이라 하였는데, 또한 수다한 기록에서 '12평장사'라

 

고도 하는 까닭은 증직을 포함한 광김 고려조 상신급

 

관위자가 위와 같이 많았기 때문이었음.  

 

 

※광김의 고려조(高麗朝) 두문동(杜門洞) 제현(諸賢)

 

1. 휘 승길(承吉)…휘 인우(仁雨)의 子로 호는 사은(沙隱)이

 

며 함종현령(咸從縣令)이었음. 

 

2. 휘 약시(若時)…휘 영리(永利)의 손(孫)으로 직제학(直提

 

學)이었음.
 

 

 

[(2) 부자(父子) 문묘 배향과 동국18현(東國十八賢)]

 


우리 광김이 삼한 갑족 중 제1로 손꼽히는 두 번째의 이유

 

로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5성(五聖)과 민손(閔損)등

 

공문10철(孔門十哲), 주돈이(周頓이) 등 송조 6현(宋朝六

 

賢) 기타와 함께 중앙의 성균관(成均館) 및 고을 향교(鄕校)

 

등에서 제향(祭享)을 받는 동국 18현 중 일문(一門)에 부자

 

(父子) 두 분 곧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선생을 배출하

 

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문묘의 배향을 받는 조상이

 

난 씨족은 다음 표에서 보듯이 신라, 고려, 조선 3한을 통하

 

여 16씨족뿐인데, 일문에서 두 분이 배향된 예는 우리 광김

 

과 은진송씨(恩津宋氏)가 있었다. 문묘(文廟)는 공자 이래

 

2000여 년 유학(儒學)을 발전시켜 온 중국 및 우리 나라 대

 

학자들의 위패(位牌)를 그 곳 대성전(大成殿)에 봉안(奉安)

 

하여 제향(祭享)하는 곳으로 우리 문묘는 현재 서울 명륜동

 

3가에 소재한다.

 

No

성명

관향

아호

관직 및 기타

1

薛  聰

경주

雨堂

신라 고승 元曉의 子로 神文王 때 翰林으로 弘儒侯로 追封

2

崔致遠

경주

孤雲

신라 때 唐나라로 가 修學하고 돌아와 翰林學士로 시호는 文昌侯

3

安  裕

순흥

晦軒

고려 忠烈王 때 修文館太學士로 시호는 文成公

4

鄭夢周

연일

圃隱

고려 恭愍王 때 관이 門下侍中으로 시호는 文忠公

5

金宏弼

서흥

寒暄堂

刑曹佐郞이었고 조선 中宗 때 右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敬公

6

鄭汝昌

하동

一두

縣監이었고 右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獻公

7

趙光祖

한양

靜菴

大司憲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正公

8

李彦迪

여주

晦齋

左贊成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元公

9

李  滉

진성

退溪

大提學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純公

10

金麟厚

울산

河西

弘文館校理였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正公

11

李  珥

덕수

栗谷

吏曹判書였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成公

12

成  渾

창녕

牛溪

左參贊이었고 右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簡公

13

金長生

광산

沙溪

刑曹參判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元公

14

趙  憲

백천

重峯

僉正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敬公

15

金  集

광산

愼獨齋

判中樞府事였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敬公

16

宋時烈

은진

尤菴

左議政이었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正公

17

宋浚吉

은진

同春堂

吏曹判書였고 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正公

18

朴世采

반남

玄石

左議政이었고 시호는 文純公

 

우리 나라 문묘 제도는 중앙에 성균관이 있고, 각 고을에 향교가 있으며, '대성전'에서는 공자 이하 고대 중국 이래의 성(聖) 현(賢) 제위(諸位)와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享祀)를 하여 오는데, 중앙 '성균관'에서는 5성(五聖), 공문 10철(孔門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중국 역대제현(歷代諸賢) 94위 및 동국 18현 도합 133위를 봉향(奉享)한다. 그리고 각 고을 향교 중에서 주(州), 부(府), 군(郡) 곧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가 다스리는 고을에서는 소위 중설위(中設位)라 하여 '5성, 공문 10철, 송조 6현, 동국 18현'등 39위를 봉향하며, 현(縣) 곧 현령(縣令), 현감(縣監)이 다스리는 고을에서는 소설위(小設位)로 '5성, 송조 4현(周濂溪, 程明道, 程伊川, 朱晦菴), 동국 18현'등 27위만 봉향한다.

광김은 우리 나라 예학(禮學)의 태두로 문묘에 배향된 위 두 분 선조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고려조에서도 '공자' 이래의 유학과 문묘의 제도를 처음 도입한 7세 문안공 휘 양감(良鑑)이 드러났고, 조선초부터 도덕과 학행이 뛰어난 분들이 많이 나와서 유학(儒學)의 대통을 계승하고 나아가서는 예문(禮文) 종가(宗家)로서 조선 사회의 정신을 지배한 대학자들이 연면히 이어져 왔음을 자랑으로 삼는다.

 

* 참고 : 대성전에서 봉향하는 고대 중국 이래의 성현

 

1. 5성…孔子(丘, 仲尼), 顔子(回, 子淵), 曾子(參, 子輿), 子思(伋, 子思), 孟子(軻, 子車)

 

2. 공문10철…閔損(子騫), 冉耕(伯牛), 冉雍(仲弓), 宰予(子我), 端木賜(子貢), 冉求(子有), 仲由(子路), 言偃(子游), 卜商(子夏), 顓孫師(子張)

 

3. 송조6현…周敦頤(茂叔, 濂溪), 程顥(伯淳, 明道), 程頤(正淑, 伊川), 邵雍(堯夫, 安樂), 張載(子厚, 橫渠), 朱熹(仲晦, 晦菴)

 

4. 중국 역대 94현…澹臺滅明, 原憲, 南宮适, 商翟, 漆雕開, 公西赤, 樊須, 梁鱣(전), 冉孺, 伯虔, 冉季, 漆雕哆, 漆雕徒父, 商澤, 任不齊, 公良孺, 秦冉, 公肩定, 鄡(교)單, 罕父黑, 公祖句玆, 縣成, 燕伋, 顔之僕, 樂欬(해), 顔何, 狄黑, 孔忠, 公西蒧(점), 施之常, 秦非, 申棖(정), 顔噲(쾌), 左丘明, 穀梁赤, 宓(복)不齊, 公冶長, 公晳哀, 高柴(시), 司馬耕, 有若, 巫馬施, 顔辛, 曹卹, 公孫龍, 秦商, 顔高, 壤駟赤, 石作蜀, 公夏首, 後處, 奚容蒧, 顔祖, 句井疆, 秦祖, 榮旂(기), 左人郢(영), 鄭國, 原亢, 廉潔, 叔仲會, 邽(규)巽, 公西輿如, 蘧瑗, 林放, 陳亢, 琴張, 步叔乘, 公羊高(이상 69명 周)/高堂生, 毛萇, 劉向, 鄭衆, 盧植, 服虔, 伏勝, 戴聖, 董仲舒, 孔安國, 杜士春, 鄭玄(이상 12명 漢)/范甯(영)(이상 1명 晉)/韓愈(이상 1명 唐)/楊時, 胡安國, 張栻, 黃榦, 眞德秀, 司馬光, 羅從彦, 李侗, 呂祖謙, 蔡沈(이상 10명 宋)/許衡(이상 1명 元)

 

 

[(3) 7대제학(八大提學) 문형(文衡) 배출]

 


자신의 문벌(門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높은 벼슬에 있었던 조상의 수를 헤아

 

고 혹은 대과급제자의 수가 많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환자(科宦者)의

 

는 정치적 혁명기의 처신이나 혹시는 집안에 왕비가 나서 세도정치(勢道政治)를 한

 

로 얻은 덤일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소위 '세상이 알아주는 집안'이라할 때는 그

 

벼슬보다는 훌륭한 학자인 석학거유(碩學巨儒)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였는가를 첫손으

 

로 꼽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삼한갑족의 최상위로 광김연리(光金延李)를

 

손꼽는 까닭은 당대 학자로서 최고인 학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인 '대제학, 문형'이

 

7명으로 조선조 제1위였기때문이다.

 

'문형'은 '온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는 뜻으로 '대제학'의 별칭인데, 학문의 권위가 높다고만 해서 되는 관직이 아니었다. '문형'이 되자면 문과 대과 급제자로서도 원칙적으로 호당(湖堂) 출신이라야만 가능했다. 조선조에서 '호당'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 젊고 재주 있는 문신(文臣)으로서 임금의 특명(特命)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을 가리키며 그러한 특전으로 학문을 하는 것을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하였다.

대제학'으로서도 '문형'의 별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한정되어 있었는데, 반드시 홍문관(弘文館) 대제학과 예문관(藝文館) 대제학 및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또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등 나라 전체의 학문 관련 세 가지 최고 직위를 모두 겸직하는 경우에 한하였다. 그리하여 '문형'은 위 3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위이므로 학자로서 최고의 명예로 여겼으며 품계(品階)는 비록 판서와 동등한 정이품(正二品)이었지만 삼공(三公) 곧 삼정승이나 육조(六曹) 판서보다도 높이 대우하였다. 또 조선조의 벼슬들은 국법에 따라 모두 임기의 기한이 있었는데, '문형'은 본인 의사에 따라 종신직이었다.

[참고]:우리 역사상 여러 벼슬에서 최연소의 기록을 세운 이는 광주이씨(廣州李氏)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었는데, 20세에 문과에 오르고 23세에 호당에 들었으며, 31세에 문형이 되었고, 38세에 우의정, 42세에 영의정이었다.    
 

우리 광김의 선조로 '문형'을 지낸 분으로는 다음처럼 모두 7분인데 전국의 씨족 중 제1위이다. 우리 종중의 기록에서 혹시 광김의 문형을 8명으로 헤아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영조 때 신임사화(辛壬士禍) 관련으로 삭탈 관직 후 사사(賜死)된 아계(아溪) 휘 일경(一鏡) 선조를 포함시켰기 때문이었다. '아계'는 비록 순종조에 신원(伸寃)이 되기는 하였으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형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됨.
※ '아'자의 한자는 'Y'
아계(丫溪)

 

※ 광김의 7 대제학 문형
1. 휘 익희(益熙)
☞ 휘 槃의 장자<사계의 장손(長孫)>으로 호는 滄洲이며 인조조에 문과하여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이었으며 영의정으로 추증.
2. 휘 만기(萬基)
☞ 사계의 장자인 휘 槃 의 차자로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휘 益兼의 장자로 호는 瑞石이며 효종조에 문과하여 肅宗의 國舅로 영돈녕부사 겸 양관대제학이었으며 영의정에 추증.
3. 휘 만중(萬重)
☞ 휘 萬基의 아우로 호는 西浦이며 현종조에 문과하여 예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에 이르렀고,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지었음.
4. 휘 진규(鎭圭)
☞ 휘 萬基의 차자로 호는 竹泉이며 숙종조에 문과 장원하여 양관대제학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고 영의정에 추증.
5. 휘 양택(陽澤)
☞ 휘 鎭圭의 子요 호는 健菴이며 영조조에 문과장원하여 영의정에 이르렀음.
6. 휘 상현(尙鉉)
☞ 휘 槃의 제3자 益勳의 7대손으로 호는 鏡臺이며 철종조에 문과한 후 보국(輔國) 이조판서 겸 文衡이요 致仕하여 奉朝賀를 지냄.
7. 휘 영수(永壽)
☞ 휘 萬基의 장자 휘 鎭龜의 6대손으로 호는 荷亭이며 순조조에 문과하여 양관대제학을 거쳐 輔國判書에 이르렀음.

  

[참고]: (1) 조선조의 '문형'은 도합 134명인데, 2명 이상을 배출한 씨족은 모두 29씨족이고, 5명 이상 배출한 씨족은 광산김, 연안이씨 7명, 전주이씨 7명, 신안동김씨(장동김씨) 6명, 달성서씨 6명, 의령남씨 6명, 덕수이씨 5명 등 7씨족뿐임

(2) 일문7 대제학 :  광김의 대제학 문형 7분이 모두 사계 선생 한 분의 자손임. 한 씨족에서 7대제학이 난 집안은 광김 외에도 전주이씨와 연안이씨가 있으나 연안이씨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자손은 6대제학으로 3대대제학, 부자대제학이 났으므로 한 사람의 자손으로 7대제학은 사계 선생 가문이 유일함. 광김으로 양녕대군 장인이었던 휘 한로(漢老)는 예문관 대제학이었음.

(3) 광김 3대 대제학…휘 萬基―휘 鎭圭―휘 陽澤

(4) 조선 역사상 3대 대제학이 배출된 집안으로는 광김 사계 자손, 연안이씨 월사 가문(廷龜―明漢―一相) 외에도, 전주이씨 밀성군파(密城君派)의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자손으로 '敏서―觀明―徽之' 달성서씨 약봉(藥峯) 서성(徐성)의 자손으로 '有臣―榮輔―箕淳(1791-1854)' 등이 또한 그러하였으니, 이 4 씨족 외에는 없었다.

(5) 광김 부자대제학…휘 萬基―휘 鎭圭,  및 휘 鎭圭―휘 陽澤

(6) 광김 형제대제학…휘 萬基…휘 萬重

 

 

 

[(4) 주요 씨족별 과환(科宦) 비교]

 


자신의 문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높은 벼슬에 있었던 조상의 수를 헤아리고

 

대과급제자의 수가 많음을 일컬어 금관자가 서말(三斗)이니<금관자(金貫子)는

 

조선조에서 正三品 이상 고관들의 망건줄에 꿰던 玉 혹은 金으로 만든 고리를 뜻하는

 

데, 從一品 崇祿·崇政大夫 이상은 無刻 玉貫子, 從二品 正憲·資憲大夫는 彫刻 金貫子,

 

正二品嘉義·嘉善大夫는 무각 金貫子, 正三品 通政大夫는 조각 옥관자를 달았음>

 

 

삼대 정승, 부자 영상(領相)이 났느니,  혹은 삼조(三朝)에 개국공신(開國功臣)을 내었

 

느니 하는 등등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러한 과환자(科宦者)의 수는 정치적 혁명기의 처신이나 혹시는 집안에 왕비

 

가 서 세도정치를 한 결과로 얻은 덤일 수도 있었다. 특히 상신이나 대과급제자가 많

 

씨족은 국성(國姓) 왕족인 전주이씨인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직에 오를 수 없

 

는 학문 있는 왕손(王孫)들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그 수가 많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외에도 왕비가 여럿 나 세도한 집안이 또한 그러함을 알게 되는데, 그 때문에

 

비가 많이 난 집안을 이른바 '치마양반'이라 하여 문벌, 벌족의 등급을 낮추어

 

보는 것이 전통이었다

참고로 대과 급제자 70명 이상을 배출한 주요 씨족의 주요 과환자 배출 현황은 다음과

 

다.


대과 급제자 70명 이상 배출  씨족의 주요 과환자 비교

연번

성 씨

대과
급제

상신

문형

 왕

생원
진사

연번

성 씨

대과
급제

상신

문형

 왕

생원
진사

      1

전주李씨

    876

    22

    7

 

  2719

     27

진주柳씨

    132

      2

      1

 

      243

2

안동權씨

359

8

3

1

909

28

풍산洪씨

129

8

1

 

298

3

파평尹씨

331

11

2

4

934

29

문화柳씨

126

8

1

 

381

4

남양洪씨

329

9

3

1

833

30

김해金씨

123

1

 

 

469

5

안동金씨

315

19

6

4

716

31

연일鄭씨

119

5

3

 

277

6

청주韓씨

287

12

1

5

768

32

순흥安씨

116

2

 

 

325

7

광산金씨

265

5

8

1

689

33

창녕曺씨

113

1

 

 

202

8

밀양朴씨

261

1

1

 

755

34

청풍金씨

110

8

3

2

240

9

연안李씨

250

8

7

 

614

35

해평尹씨

110

6

3

1

271

10

여흥閔씨

 233

 12

 3

 4

 459

 36

전주崔씨

 109

3

1

 

348

 11

 청송沈씨

 224

 13

 2

3

 567

 37

성주李씨

 107

1

 

 

 349

 12

 진주姜씨

 219

5

1

 

510

38

여주李씨

 107

 

 

 

240

 13

 반남朴씨

 215

7

2

2

282

39

여산宋씨

 106

2

 

1

226

 14

경주金씨

 202

6

 

3

535

 40

덕수李씨

 105

7

5

 

275

 15

동래鄭씨

 198

17

2

 

484

 41

의성金씨

 96

1

 

 

 256

 16

한산李씨

 195

4

2

 

 

 42

강릉金씨

 96

1

 

 

 207

 17

 廣州李씨

 188

5

2

 

376

43

양천許씨

 93

5

 

 

 231

 18

 풍양趙씨

 182

7

4

2

391

 44

 전주柳씨

 93

 

 

 

 243

 19

 경주李씨

 178

 8

 3

 

 

 45

 양주趙씨

 90

8

3

1

247

20

평산申씨

172

7

2

 

561

46

해주吳씨

89

2

3

 

302

21

전의李씨

165

4

1

 

431

47

한양趙씨

89

2

2

 

286

22

연안金씨

163

6

2

1

271

48

기계兪씨

85

3

 

 

284

23

풍천任씨

144

1

 

 

303

49

고령申씨

83

3

3

 

189

24

달성徐씨

140

9

6

1

393

50

용인李씨

83

3

1

 

197

25

의령南씨

138

6

6

 

376

51

은진宋씨

74

2

1

 

219

26

창녕成씨

134

5

2

 

317

 

 

[참고]: (1) 위 표에서 광산김씨는 문과(대과) 급제자의 수가 제7위로 되어 있으나 안동김씨의 경우 '구안동 상락김씨와 신안동 장동김씨' 두 씨족이 합쳐진 숫자이며, '남양홍씨'의 경우도 '토홍 및 당홍' 의 두 씨족이 합쳐진 숫자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제5위에 해당함.

(2) '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의 제2자인 김숙승(金叔承, 工部侍郞)을 시조로 하는 속칭 구안동(舊安東) 상락김씨(上洛金氏)와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속칭 신안동(新安東) 장동김씨(壯洞金氏) 두 씨족을 합한 숫자임. 대과급제자 315명을 '구안동'과 '신안동'으로 나누어 살피지는 못하였으나, 상신 19명중 '구안동'이 4명, '신안동'이 15명이며, 문형 6명, 왕비 4명은 모두 '신안동'임.

(3) 남양홍씨 역시 고려 초기 본래 당(唐)나라 사람으로 문화 사절의 임무를 띠고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였다고 전하는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는 당홍(唐洪)과 이보다 300년 정도 늦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 홍선행(洪先幸, 金吾衛別將)을 시조로 하는 토홍(土洪) 등 두 씨족을 합친 숫자임. 대과급제자 329명을 '당홍'과 '토홍'으로 나누어보지는 못했으나 '당홍'은 상신 8명, 문형 2명, 왕비 1명이 나고, '토홍'에서 상신 2명, 문형 1명이 났음.

(4) 상신, 문형, 왕비의 숫자는 각 씨족의 역사, 보첩 등에서 기록한 것과 일반 출판물에서 기록한 숫자가 다를 수 있다. 씨족의 기록으로는 실제 상신, 문형을 지낸 조상 모두를 기록하게 되지만 출판물에서는 나라에 죄를 입어 삭직(削職)이 된 경우를 제외한 것일 수 있다. 우리 광김 역시 문중의 기록은 조선조 8 문형 대제학이라 하지만 출판물의 기록은 7분으로만 나타나는데, 그 까닭은 영조 때 소론(少論)에 가담하여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킨 죄로 네 아들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고 이어 삭직된 휘 일경(一鏡)이 빠졌기 때문이다. 왕비의 경우 역시 추존(追尊)의 경우를 계산하는가 아니하는가에 따라 통계상의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

(5) 참고로 대과급제자가 70명 미만이면서도 상신(相臣)을 2명 이상 배출한 씨족도 많은데, 능성구(具)씨, 순천김(金)씨, 온양정(鄭)씨, 장수황(黃)씨, 죽산박(朴)씨, 삭령최(崔)씨, 진주하(河)씨, 교하로(盧)씨, 광주로(盧)씨, 거창신(愼)씨, 풍산유(柳)씨, 청주정(鄭)씨, 풍산심(沈)씨, 원주김(金)씨, 원주원(元)씨 등이 그러하다.  

 

 

[(5) 상신(相臣)과 대과급제자(大科及第者)]
 


우선 관직으로 1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했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3정승의 수를 기타의 씨족

 

들과 비교하면 우리 광김은 25위 이하로 도합 5분인데, 상

 

신을 지낸 분들을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휘 극성(克成)
 

 ☞ 휘 孟權의 子로 호는 靑蘿며 연산군조에 문과하여 右議

 

政에 이르렀음

 

2. 휘 국광(國光)
 

☞ 휘 問의 孫으로 호는 瑞石이며 세종조에 문과하여 左議

 

政에 이르렀음

 

3 휘 양택(陽澤)

  ☞ 휘 鎭圭의 子요 호는 健菴이며 영조조에 문과장원하여

 

領議政에 이르렀음

 

4 휘 상복(相福)

  ☞ 대제학 휘 益熙의 玄孫이며 휘 元澤의 子로 호는 稷下

 

이며 영조조에 문과하여 領議政에 이르렀음

 

5 휘  희(憙)

 
 
☞ 대제학 휘 益熙의 5대손이며 相庚의 子로 호는 芹窩로

 

영조조에 문과하여 右議政에 이르렀음

 

 

[참고]: (1) 조선조에 3대 정승이 난 집안으로는 청송심씨(德符―溫―澮), 청풍김씨(構-在魯-致仁), 달성서씨(宗泰―命均―志修) 등 3 씨족이 있었음.

(2) 부자(父子) 영상(領相)이 난 씨족으로는 청송심씨(溫―澮), 장수황씨(喜―守身), 남양홍씨 토홍(土洪)의 '彦弼―暹', 해평윤씨(斗壽―昉), 신안동김씨(壽恒―昌集), 연안김씨(익―載瓚) 등이 있었음.

(3) 부자 정승으로는 (1), (2) 외에 풍양조씨(豊壤趙氏) 좌의정 문명(文明)―우의정 재호(載浩), 여흥민씨 좌의정 鼎重―우의정 鎭長 등이 있었음

(4) 형제 영의정은 신안동김씨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아들로 '壽興…壽恒' 형제, 평산신씨 '晩…晦' 형제가 있었음.

(5) 형제 정승으로는 위 (4) 외에 전주최씨 영의정 錫鼎…좌의정 錫恒 형제가 있었고, 아울러 이들의 조부는 영의정 鳴吉이었으며, 아래의 풍양조씨 좌의정 文命과 영의정 顯命이 또한 형제였음.

(6) 세상에 전하는 말로 일가4정승(一家四政丞)이란 것도 있는데, 세조 때 공신이던 청주한씨 '영의정 明澮…좌의정  確…우의정 伯倫…영의정 致亨'이 10촌 이내 당내(堂內)였고, 풍양조씨 좌의정 文命과 우의정 載浩는 부자간이고, 영의정 顯命은 文命의 아우인데, 종조부 相愚는 우의정이었음   
(7) 조선조의 상신은 모두 366명인데, 그 상신이 많이 난 씨족의 주요 순위를 보면 전주이씨 22명, 동래정씨 17명, 신안동김씨 15명, 청송심씨 13명, 여흥민씨 12명, 청주한씨 12명, 파평윤씨 11명, 달성서씨 9명, 남양홍씨 당홍(唐洪), 연안이씨, 경주이씨, 풍산홍씨, 문화유씨, 청풍김씨, 양주조씨 등이 각 8명, 반남박씨, 풍양조씨, 평산신씨, 덕수이씨 각 7명, 경주김씨, 연안김씨, 의령남씨, 해평윤씨 등이 각 6명, 그 다음이 광산김, 진주강씨, 광주이씨, 창녕성씨, 연일정씨, 양천허씨 등이 각각 5명으로 상신 5명은 씨족별 순위로 보아 25위 이하가 된다.

(8) 왕비를 많이 배출한 씨족의 순위는 청주한씨 5명, 파평윤씨, 신안동김씨, 여흥민씨가 각 4명, 청송심씨, 경주김씨가 각 3명, 반남박씨, 풍양조씨, 청풍김씨 각 2명이며, 광김의 1명<숙종비 인경왕후로 국구(國舅) 대제학 서석(瑞石) 휘 萬基의 女로 무후, 요절하였음>은 순위 10위 이하이다.   

 

한편 조선 역대의 문과 대과 급제자는 모두 15.574명인데, 우리 광김의 경우 위 표에서 보듯이 씨족별 순위로는 제7위인 265명이지만, 그 중 4위의 남양홍씨는 '당홍 및 토홍' 두 씨족을 합친 것이고, 5위의 안동김씨 역시 '구안동 및 신안동'을 합친 숫자이므로 실제로 씨족별 순위는 제5위가 된다.  

 

 

[(6) 청백리(淸白吏)]

 


청백리 제도는 조선조에 관리들 중에서 청렴결백한 사람만

 

을 선발하여 후세에 길이 거울삼게 했던 관기숙정(官紀肅

 

正)을 위한 제도였다. 여기에 선발되기 위하여는 엄격한 자

 

격 심사의 심의를 거쳐 임금의 재가(裁可)를 얻어야 했다.

 

또 녹선(錄選)이 되면 그 자손들도 부조(父祖)의 음덕(蔭德)

 

을 입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특전도 주어졌다. 그러다 숙

 

종 이후로는 이들 청백리의 자손이 너무 불어나 삼상(三相)

 

과 고관이 추천하여 대개 5명 정도가 특채 등용되었는데,

 

그럼으로써 청백리가 많이 난 씨족들은 그것을 큰 자랑으로

 

삼았다.

 

청백리는 총 44씨족에서 218명이 배출되었는데, 여러 기록들에서 본관별로 6명 이상을 배출한 집안은 전주이씨, 파평윤씨, 안동김씨, 연안이씨, 남양홍씨, 전의이씨 등 6씨족뿐이라 하였다. 우리 광김 양간공 파보에서도 다음 6분으로 기록하고 있고, 그 중 휘 약항(若恒), 장(), 겸광(謙光), 장생(長生) 네 분만 전고대방(典故大方)에 등재되어 있는데 정확한 기록의 검토는 훗날의 상고(詳考)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참고로 그 다음 순위로 5명을 배출한 씨족은 광주이씨, 한산이씨, 양천허씨 등이었다.

 

1. 휘 약항(若恒)…휘 정(鼎)의 子로 호는 척약재(若齋)며 공민왕 신해에 문과하여 대사성(大司成)을 지내고 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음.

2. 휘 장()…장령(掌令)이었음.

3. 휘 겸광(謙光)…휘 국광(國光)의 제(弟)로 호는 서정(西亭)이며 세조 계유에 문과하고 좌참찬(左參贊)이었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음.

4. 휘 굉()…휘 순성( 順誠)의 子로 연산군 갑자에 문과하고 관찰사(觀察使)를 지냈음.

5. 휘 개(鎧)…휘 소윤(昭胤)의 子로 호는 독송정(獨松亭)이었으며 중종 경자에 문과하여 우참찬을 지냈음.

6. 휘 장생(長生)…문묘 배향조 참조

 

.

[(7) 호당(湖堂)]


이미 위에서 본 바 있듯이 '문형'이 되자면 문과 급제자로서

 

도 원칙적으로 호당(湖堂) 출신이라야만 가능했으며 조선

 

조에서 '호당'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 젊고 재주

 

있는 문신(文臣)으로서 임금의 특명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

 

하던 곳을 가리키는데, 호당에 들 사람의 추천 선발은 문형

 

의 책임이고 특권이었다. 조선조에 호당에 뽑힌 사람은 모

 

두 257명인데, 씨족 중 남양홍씨 '당홍'의 경우 영의정을 지

 

낸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은 그 조부 춘경(春卿), 부 천

 

민(天民) 3대가 연거퍼 호당에 뽑힌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이 또한 문벌의 조건으로는 중요한 것이라 씨족별

 

로 구체적인 통계를 내어보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광김의 경

 

우 양간공파보 부록에서 모두 7분이라 하였는데, 사실이 그

 

렇다면 아주 상위에 속한다. 그러나 다음 7분 중 휘 질충(質

 

忠), 구(絿), 계휘(繼輝) 3분만 전고대방(典故大方)에 보이

 

고 나머지 네 분은 거기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일의 고

 

증을 기다리기로 한다.

 

 

 

1. 휘 호(浩)…휘 열(烈)의 손(孫)으로 성종 임진에 문과(文

 

科)하여 관찰사로 예조참의에 추증되었음.

 

 

2. 휘 기(紀)…휘 자진(子進)의 손으로 호는 옥곡(玉谷)이며

 

중종 기묘에 문과하여 의정부 사인(舍人)이었음.

 

 

3. 휘 우서(禹瑞)…휘 호(浩)의 子로 연산군 갑자에 문과하

 

여 의정부 사인으로 대사성(大司成)에 추증되었음.

 

 

4. 휘 잘충(質忠)…휘 백겸(伯謙)의 증손(曾孫)으로  명종

 

무신에 문과하여 호조정랑(戶曹正郞) 지제교(知製敎)이었

 

음.

 

 

5. 휘 구(絿)…영(英)의 7대손으로 호는 자암(自菴)이며 중

 

종 계묘에 문과하여 부제학(副提學)으로 호조판서(戶曹判

 

書)에 추중되었음.

 

 

6. 휘 개(鎧)…청백리 조(條) 참조.

 

 

7. 휘 계휘(繼輝)…휘 호(鎬)의 子로 호는 황강(黃岡)이며

 

명종 기유 정시(庭試)에 장원하여 대사헌(大司憲)으로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음.

 

 

 

 

[(8) 남대(南臺)와 경연관(經筵官)]


조선조에서 학행(學行)이 높아 사헌부(司憲府)의 장령(掌

 

令)이나 지평(持平)의 관직에 추천된 사람을 특히 남대(南

 

臺)라 하여 아주 명예로운 관직으로 인정하였으므로 이는

 

개인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씨족의 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리고 국왕을 상대하여 글을 강론하고 사상을 토론하는 일

 

을 맡은 관청인 경연청(經筵廳)의 영사(領事) 이하 참찬관

 

(參贊官), 시강관(侍講官) 기타 관리를 경연관(經筵官)이라

 

하여 역시 학자 출신 관리의 큰 영예로 삼았는데 광김의 남

 

대와 경연관은 다음과 같다.

 

 

1. 휘 동준(東準)…휘 태현(台鉉) 10대손으로 호는 봉곡(鳳

谷)이며 인조조에 일천(逸薦)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나 불취(不就)하였음.

2. 휘 장생(長生)…위 문묘 배향 조 참조, 인조조에 사헌부장령, 사업(司業), 원자요속관(元子僚屬官) 강학관(講學官) 집의(執義) 등 역임.

3. 휘 집(集)…위 문묘 배향 조 참조, 인조조에 사헌부집의를 거쳐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成) 사헌부대사헌을 역임.

4. 휘 정묵(正默)…휘 만기(萬基)의 玄孫으로 호는 과재(過齋)며 일천으로 사헌부지평이요 서연관(書筵官) 경연관(經筵官) 겸임.

5. 휘 낙현(洛鉉)…휘 익경(益炅) 7대손으로 호는 계운(溪雲)이며 일천으로 경연관과 진선(進善)이요 사헌부대사헌에 이르렀음.

 

 

[(9) 부조묘(不廟)]

 


옛날의 양반 사대부들의 집안에는 고조부 이하 부(父)까지

 

의 위패(位牌)를 봉안하는 사당(祠堂)이 있었고 아래로 대

 

수(代數)가 늘어나 4대를 넘어서는 5대조부터는 사당에서

 

그 위패를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위

 

패는 영구히 사당에 봉안하여 모시도록 국가가 허락한 신위

 

(神位)를 불천지위(不遷之位) 혹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였

 

고 그 불천지위를 모시는 사당을 부조묘(不조廟)라 하였다.

 

씨족 중 그러한 조상이 많은 것을 아주 큰 영예로 여겼는데,

 

우리 광김의 경우 1984년 간행 양간공파보에 비교적 소상

 

하게 조사되어 있으나 우리 예안파의 경우 예안 입향의 증

 

참판공, 근시재공이 빠져 있어 완전하지 못한데 구보(舊譜)

 

에 열기한 부조묘 선조는 다음과 같다.

 

 

1. 휘 극성(克成)…위 조선 상신 조 참조

2. 휘 백겸(伯謙)…휘 남우(南雨) 曾孫으로 세조 때 무과(武科)하여 평안도(平安道)·경상도(慶尙道) 병사(兵使, 兵馬節度使)를 지냈고, 치사(致仕) 하여 봉조하(奉朝賀)를 지냈음

3. 휘 국광(國光)…위 조선 상신 조 참조

4. 휘 겸광(謙光)…위 조선 청백리 조 참조

5. 휘 인경(仁慶)…휘 헌윤(憲胤) 子로 호는 송월헌(松月軒)이며 광천위(光川尉)로 명종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음

6. 휘 부필(富弼)…휘 연(緣) 子로 호는 후조당(後彫堂)이며 생원(生員)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문순공(文純公)

7. 휘 해(垓)…휘 부의(富儀) 子로 호는 근시재(近始齋)이며 예문관 검열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임란에 경상좌도 의병대장이었음 

8. 휘 장생(長生)…위 문묘 배향 조 참조

9. 휘 집(集)…위 문묘 배향 조 참조

10. 휘 익겸(益兼)…휘 반(槃) 子로 인조 병자란에 강화도에서 순절(殉節)하였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음

11. 휘 만기(萬基)…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12. 휘 만중(萬重)…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13. 휘 진상(鎭商)…휘 익훈(益勳) 孫으로 호는 퇴어자(退漁子)며  좌참찬(左參贊)이었음

14. 휘 춘택(春澤)…휘 진구(鎭龜) 子로 호는 북헌(北軒)이며 대호군(大護軍)이었고 이조판서(吏曹判書)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에 추증되었음

15. 휘 운택(雲澤)…휘 진구(鎭龜) 子로 호는 백운헌(白雲軒)이요 호조참판(戶曹參判)이었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음 

 

    

[(10) 몽시(蒙諡)]

 


시호(諡號)란 조선조의 경우 국왕의 종친과 문무관 중에서 정이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나라에서 내려주는 호(號)인데 뒤에는 범위가 차츰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 절신(節臣) 등은 정이품이 못 되어도 시호를 주었다. 그 시호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 이의 행장(行狀)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禮曹)에 제출하면 예조에서 이를 심의한 뒤 봉상시(奉常寺)를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를 정하게 된다. 시호를 정하는 법으로는 옛부터 주공시법(周公諡法)이니 춘추시법(春秋諡法)이라 하여 중국 고대 이래의 시법을 원용(援用)하였는데, 시호에 많이 쓰는 글자로는 文, 忠, 貞, 恭, 襄, 靖, 孝, 莊, 安, 景, 翼, 武, 敬 등 120자이며 한 자 한 자마다 정의(定義)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에 알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두 자로 만들고 그 시호 아래는 공(公)자를 붙이어 불렀다. 나라가 시호를 내려주는 일을 증시(贈諡)라 하고 그 시호를 받음을 몽시(蒙諡)라 하는데, 그  중 특히 세상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글자가 '文'자 시호였다. 시법(諡法)에서 '文'자를 쓰는 분의 생전(生前) 행적은 '경천위지(經天緯地), 도덕박문(道德博聞), 민이호학(敏而好學), 박학호문(博學好文), 근학호문(勤學好問), 박학다식(博學多識)' 등등 조건에 맞아야 했다.

조선조에 들어와 광김의 선조로 시호를 받은 분들을 전게 양간공파보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으나 왕조실록에 분명히 나타나는 조선 태종조 호조판서(戶曹判書)며 의학자(醫學者)였던 휘 희선(希善)공이 원정(元靖)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을 결락(缺落)한 것 등을 보아 완전한 것은 아닌 듯싶다.

 

 

1. 휘 약시(若時)…고려 두문동 제현(諸賢) 조 참조, 문정공(文貞公)
2. 휘 청(廳)…휘 영(英) 증손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로 희정공(僖靖公)
3. 휘 치기(恥其)…휘 성지(誠之)의 孫으로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 전농사주부(典農司主簿)로 정란원종공신(靖亂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참찬(參贊)에 추증되었으며 문열공(文烈公)
4. 휘 예몽(禮蒙)…휘 영(英) 玄孫으로 대사헌(大司憲), 공조판서(工曹判書)였고 문경공(文敬公)
5. 휘 백겸(伯謙)…위 부조묘 조 참조, 양호공(襄胡公)
6. 휘 극성(克成)…위 조선 상신 조 참조, 충정공(忠貞公)
7. 휘 겸광(謙光)…위 청백리 조 참조, 공안공(恭安公)
8. 휘 면(沔)…휘 한(閑) 孫으로 병사(兵使)였고 장도공(莊悼公)
9. 휘 여석(礪石)…휘 열(閱) 曾孫으로 호는 심재(心齋)며 대사헌, 형조(刑曹) 및 이조판서(吏曹判書)였고 충목공(忠穆公)
10. 휘 극핍(克핍)…휘 겸광(謙光) 子로 좌찬성(左贊成)으로 평정공(平靖公)

11. 휘 부필(富弼)…휘 연(緣) 子로 호는 후조당(後彫堂)이며 생원(生員)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문순공(文純公)
12. 휘 구(絿)…위 호당 조 참조, 문의공(文懿公)
13. 휘 영(土+令)…휘 부륜(富倫) 子로 호는 계암(溪巖)이며 주서(注書)였고 이조판서, 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문정공(文貞公) ??  
14. 휘 만수(萬壽)…휘 남우(南雨) 8대손으로 무과 후 부사(府使)였으며 공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장양공(莊襄公)

15. 휘 장생(長生)…위 문묘 배향 조 참조, 문원공(文元公)

16. 휘 득남(得男)…휘 신동(神童)의 5대손으로 호는 죽헌(竹軒)이며 무과 후 선전관(宣傳官)이었고 병조판서에 추중되었는데, 충의공(忠毅公)
17. 휘 집(集)…위 문묘 배향 조 참조, 문경공(文敬公)
18. 휘 우형(宇亨)…휘 위남(偉男) 孫으로 공조판서였고 정혜공(貞惠公)
19. 휘 익희(益熙)…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정공(文貞公)
20. 휘 익겸(益兼)…위 부조묘 조 참조, 충정공(忠正公)
21. 휘 익훈(益勳)…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형조참판(刑曹參判)이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헌공(忠獻公)
22. 휘 만기(萬基)…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충공(文忠公)
23. 휘 만중(萬重)…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효공(文孝公)
24. 휘 덕령(德齡)…휘 규(珪)의 후손으로 임진왜란에 의거(義擧) 익호장군(翼虎將軍)과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除授)받았고 충장공(忠壯公)
25. 휘 진구(鎭龜)…휘 만기(萬基) 子로 호는 만구와(晩求窩)며 호조판서(戶曹判書)였고 경헌공(景獻公)
26. 휘 진규(鎭圭)…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청공(文淸公)
27. 휘 춘택(春澤)…위 부조묘 조 참조, 충문공(忠文公)
28. 휘 보택(普澤)…휘 춘택(春澤) 弟로 호는 척재(척齋)며 감사(監司)이었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익헌공(翼獻公)
29. 휘 운택(雲澤)…위 부조묘 조 참조, 충정공(忠貞公)
30. 휘 원택(元澤)…휘 진옥(鎭玉) 子로 호는 구사재(九四齋)며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었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효정공(孝靖公)
31. 휘 양택(陽澤)…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간공(文簡公)
32. 휘 상복(相福)…위 조선 상신 조 참조, 문헌공(文憲公)
33. 휘 상악(相岳)…휘 익훈(益勳) 玄孫으로 호는 위암(韋菴)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문간공(文簡公)
34. 휘 상휴(相休)…휘 익경(益炅) 玄孫으로 호는 초천(蕉泉)이며 이조판서 겸 예문관 대제학이었고 문간공(文簡公)
35. 휘 희(憙)…위 조선 상신 조 참조, 효간공(孝簡公)
36. 휘 기성(箕性)…휘 익훈(益勳) 5대손으로 호는 와길헌(臥吉軒)이며 영조조 광은도위(光恩都尉)로 효헌공(孝獻公)
37. 휘 기은(箕殷)…휘 익경(益炅) 5대손으로 이조판서였고 청헌공(淸獻公)
38. 휘 기석(箕錫)…휘 인경(仁慶) 9대손으로 호는 우정(藕汀 )이며 병조판서 겸 의금부사(義禁府事) 지삼군부(知三軍府) 훈련원사(訓練院事)였고  정무공(貞武公)
39. 휘 재창(在昌)…휘 기성(箕性) 子로 호는 춘포(春圃)며 보국이조판서(輔國吏曹判書)였고 정간공(貞簡公)
40. 휘 재현(在顯)…휘 기은(箕殷) 子로 호는 미서(薇西)며 보국이조판서였고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는데 효문공(孝文公)
41. 휘 상현(尙鉉)…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헌공(文獻公)
42. 휘 낙현(洛鉉)…위 남대(南臺) 조 참조, 문경공(文敬公)
43. 휘 보현(輔鉉)…휘 기은(箕殷) 孫으로보국판서(輔國判書)였고 문충공(文忠公)
44. 휘 영수(永壽)…위 조선 대제학 조 참조, 문헌공(文獻公)
45. 휘 영목(永穆)…휘 상악(相岳) 玄孫으로 이조판서였고 문헌공(文獻公

 

 

 

 

[(11) 봉군(封君)과 공신(功臣)]

 


나라에 큰 공(功)을 세운 사람에게는 국왕이 공신(功臣)이란 훈호(勳號)가 내려 ○○君으로 봉군(封君) 또는 봉호(封號하게 되는데, 예부터 그러한 선조를 많이 배출한 것을 씨족의 큰 영예로 여겼다. 딸이 왕비로 간택되어 국구(國舅)가 되었을 경우나 1품의 공신일 때 예를 들어 우리 광김인 경우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등으로 봉작(封爵)하는 예와 같다.

그 중에 특히 공신(功臣)이란 왕조의 창업, 신왕(新王)의 즉위, 전란(戰亂)의 평정(平征) 등 왕실과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예를 들어 개국공신(開國功臣), 정사공신(定社功臣) 등의 칭호(稱號)를 주고 아울러 군호(君號)를 받도록 하였다. 이들 공신은 왕과 회맹(會盟)하므로 국가 최대의 특권을 입어 영작(榮爵), 토지(土地), 노비(奴婢) 등을 받고 그 자손들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아도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조선조에서는 모두 28차례의 공신 봉호가 있었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는 그것을 너무 남발하여 이른바 '안방功臣'까지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위훈(僞勳)이라 하여 삭훈(削勳)의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조 중요 공신의 훈호는 다음과 같다.

씨족별 기록으로 공신의 봉작(封爵)이 많았던 가문으로는 전주이씨 38, 청주한씨 24, 남양홍씨 16<당홍10, 토홍6>, 파평윤씨 16, 안동권씨 16, 한산이씨 12, 문화유씨 12, 경주이씨 11, 연안이씨 10, 안동김씨 10, 능성구씨 9 명 등이 유명하며 전고대방(典故大方)의 기록으로 우리 광김은 다음의 5분 관련 도합 6건이었다.

 

 

1. 세조조 이시애란(1467) 적개공신 2등/휘 국광(國光), 휘 백겸(伯謙)
2. 성종 즉위년(1471) 좌리공신 2등/휘 국광(國光)/3등 휘 겸광(謙光)
3. 중중 중종반정(1506) 정국공신/4등 휘 극성(克成)
4. 중종 이과 옥사(1507) 정난공신/3등 휘 세준(世準)
5. 명종 즉위년(1545) 위사공신/2등 휘 광준(光準)
6. 숙종 경신대출척 보사공신/1등 휘 만기(萬基)

 

 

그러나 1984년(甲子)에 간행한 양간공파보 부록에는 위 분들 외에 증직(贈職)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광산김의 봉작(封爵)을 열기하고 있는데, 이는 증직이었거나 1∼4등 사이 에 드는 공신 이외에도 소공(小功) 있는 사람에게 주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을 포함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휘 계지(繼志)…휘 도탁(都卓)의 子로 호는 송곡(松谷)이며 조선 태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요 충순보조명량개국공신(忠純寶祚明亮開國功臣) 광성군(光城君)
2. 휘 약항(若恒)…위 청백리 조 참조, 광산군(光山君)
3. 휘 혁(革)…휘 남우(南雨) 孫으로 중화군사(中和郡事)며 호조판서(戶曹判書) 광성군(光城君) 보조공신(寶祚功臣)에 추증
4. 휘 맹권(孟權)…휘 성우(成雨) 曾孫으로 호는 만취당(晩翠堂)이요 보조공신(寶祚功臣) 영의정(領議政)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추증
5. 휘 을상(乙祥)…휘 서남(瑞南) 曾孫으로 병조판서며 광산부원군
6. 휘 한로(漢老)…위 고려조 대제학 조 참조, 광산군
7. 휘 철산(鐵山)…휘 문(問)의 子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었고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추증
8. 휘 백겸(伯謙)…위 부조묘(不조廟) 참조, 적개공신 광원군(光原君)
9. 휘 극성(克成)…위 조선 상신 조 참조, 광성부원군
10. 휘 국광(國光)…위 조선 상신 조 참조, 정충출기(精忠出氣) 적개순성(敵愾純誠) 명량경제(明亮經濟) 홍화좌리공신(弘化佐理功臣) 광산부원군
11. 휘 겸광(謙光)…위 조선 청백리 조 참조, 순성명량(純誠明亮) 좌리공신(佐理功臣) 광성군
12. 휘 면(沔)…위 몽시 조 참조, 적개공신 광주부원군(光州府院君)
13 휘 극뉴(克뉴)…휘 국광(國光)의 子로 조선 세조 때 대사간(大司諫)으로 예조참판(禮曹參判) 광원군에 추증
14. 휘 여석(礪石)…위 몽시 조 참조, 적개공신 광산부원군
15. 휘 극핍(克핍)…위 몽시 조 참조, 순충보조공신(純忠寶祚功臣) 숭록광악군(崇祿光嶽君)에 추증
16. 휘 태흘(泰屹)…휘 오음(五音)의 曾孫으로 삭주부사(朔州府使)로 적개공신 판서(判書) 한평군(漢平君)에 추증
17. 휘 억성(億成)…휘 성일(聲鎰) 孫으로 호는 매헌(梅軒)이며 선공감역(繕工監役)이었고 인조 병자란에 장의적의(仗義迪毅) 원종공신(原從功臣) 광무군(光茂君)
18. 휘 익겸(益兼)…위 부조묘 조 참조,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
19. 휘 익훈(益勳)…위 몽시 조 참조, 보사훈(保社勳) 광남군(光南君)
20. 휘 만기(萬基)…조선 대제학 조 참조, 광성부원군
21. 휘 진구(鎭龜)…위 몽시 조 참조, 광은군(光恩君0
22. 휘 두추(斗秋)…휘 춘택(春澤) 孫으로 호는 복재(復齋)며 군수(郡守)로 이조판서(吏曹判書) 광안군(光安君)에 추증

 

[참고]:<<이 자료 삼한갑족(三韓甲族)은 대구교육대학교 김규선 교수가 정리한 자료임.>>[김규선 선생]광산김씨 五大派 중의 양간공파(良簡公派)/양간공파의 六中派 중의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밀직부사공파 三小派 중의 예안파(禮安派)/전직공파(殿直公派) 후손으로 광산김문(예안파)을 알리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