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달처럼 쌍선봉에 걸린 암자 월명암
마침내 월명암에 도착했다. 월명암은 해발 400여 미터 정도의 높이에 쌍선봉에 걸린 달처럼 둥실 떠 있었다. 400년 전 부안의 기생 이매창은 '월명암에 올라서'라는 한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築蘭若倚半空(축란약의반공)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
一聲淸磬徹蒼穹 (일성청경철창궁)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을 꿰뚫었네
(후략)
_ 이매창 한시 「登月明庵」일부
추측컨대 매창이 살았던 그 시대에 이곳까지 올라온다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창은 '하늘에 기대어 절을 지었다'고 감탄했으리라. 매창이 월명암에 올라 시를 짓던 계절은 어느 계절이었을까. 그의 애인이었던 유희경과 동행했을까, 아니면 혼자 왔을까.
부설거사와 <팔죽시>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가 중건했다. 월명암을 개창한 부설거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그의 행적은 ‘부설전’이라는 고소설에 상세히 전해진다.
경주에서 출생한 부설은 법우인 영조, ·영희와 함께 구도의 길을 떠나 변산(엣이름은 능가산)에 들어서 묘적암을 세우고 수도에만 정진했다. 후제 이들은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오대산으로 길을 떠나는데, 부설원(정읍군 칠보면)에 이르렀을 때 부설은 묘화라는 아가씨를 만난게 된다. 이 운명적 만남을 뿌리치지 못한 부설은 결혼을 하고 환속하게 된다.
부설거사는 아들 등운과 월명이란 딸을 두었는데 말년이 되자 변산에 등운암과 과 월명암이란 두 암자를 지어서 하나씩 맡겼다. 겉으로 보면 부설과 묘화 부부는 여느 속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수도승보다 더 치열하게 수도에 정진했다. 그 결과 부설거사는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에 들었다" 는 <유마힐 소설경>으로 널리 알려진 인도의 유마힐 거사, 중국의 방거사 등과 더불어 3대거사로 일컬어진다.
월명암을 중건한 진묵대사도 많은 이적을 남겼다. 진묵은 조선 중기 호남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는데, 어느 날 탁발을 나갔다가 매운탕 한 솥을 얻어 마셨다. 그런 다음 진묵은 물가에 가서 토해냈는데 탕 속에 들어 있던 죽은 물고기들이 전부 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근대에는 백학명(1867∼1929)과 같은 고승이 월명암에 주석하기도 했다. 학명스님은 불교개혁의 일환으로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참선과 농사를 같은 것으로 보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 중이다. 이외에도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박중빈, 증산도를 창설한 강증산 역시 월명암을 찾아 수행한 적이 있다 하니 월명암이 수행처로서 얼마나 수승한 곳인지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此竹彼竹 化去竹 피죽피죽 화거죽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낭타죽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是是非非 看彼竹 시시비비 간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賓客接待 家勢竹 빈객접대 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 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 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부설거사가 지었다는 <팔죽시(八竹詩>)는 절묘한 각운의 묘미를 느끼게 해줌과 아울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겠다는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는 한시다.
http://cafe.naver.com/chunjeeya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009
부안의 인물 매창이 지은 '월명암에 올라서(登月明庵)'라는 한시입니다. 황정경은 송대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시문집을 칭하는 말이며, 적송자는 신선의 이름으로 신농 때의 우사(雨師)입니다.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그곳에 서방정토가 있다 하였는데 통일 신라 시대의 고승들도 이곳에 와서 더 이상 서쪽으로 갈 생각을 접어두고 이 곳에 서천법계를 열었던 것입니다.
http://byunsan.new21.org/2000/html_bs/walmyungam.htm
http://byunsan.new21.org/2004/html_bs/naebyunsan_walmyunga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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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폭포는 변산8경의 제1경 으로 변산 최고의 절경으로 이름나 있다. 높이는 22.5m 이며 예리한 칼날로 잘라낸 듯 육중한 암벽단애를 흰포말을 일으키며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고, 소(沼)를 만들면서 떨어지는 장관은 보는이로 하여금 대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봉래구곡, 옥녀담과 함께 백천내를 이어주는 직소폭포는 옥녀봉, 선인봉, 쌍선봉등의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흐르는데, 특히 여러 곳의 물이 하나로 합쳐져 깍아지른 듯한 절벽아래로 흘러내리면서 이루는 폭포는 비경이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고 둥근소를 이루는데, 이 둥근소를 실상용추라고 하며, 실상용추에서 흐른 물은 다시 제2.제3의 폭포를 이루며 흘러 분옥담, 선녀탕등의 경관을 이루는데 제9곡 암지까지 흘러가 해창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봉래구곡이라 한다 .이 봉래구곡에서 흐르는 물은 백천계류로 이어져 뛰어난 산수미를 연출한다. 외변산에 채석강이 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라면, 내변산에는 직소폭포가 있다. 변산의 폭포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그만큼 아름답다. 직소폭포는 변산 경치의 압권(壓卷)이기 때문에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仙境)을 보지 않고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직소폭포는가는 길안내
http://byunsan.new21.org/2004/html_bs/naebyunsan_jiksopokp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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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은 변산의 '산 안쪽'을 뜻한다.
호남정맥에서 나뉘어 온 하나의 산줄기가 서해로 튕겨 나온 듯한 변산반도 내변산에는 의상봉(509m), 신선봉(486m), 쌍선봉(459m) 등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와 그 사이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 승경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
http://byunsan.new21.org/2004/html_bs/naebyuns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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