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 독경 ♣>/성지 * 여행

禮山郡 金烏山 香泉寺

화엄행 2012. 6. 14. 19:57

 

 

 

 

 

 

 

 

 

 

 

 

 

 

 

 

 

 

 

향천사(香泉寺)는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산57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예산읍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1.2㎞ 가량 떨어진 금오산(金烏山) 향로봉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다.

 

향천사는 655년(백제 의자왕 15) 무렵 의각(義覺)이 창건한 고찰이다.

의각 스님은 백제의 고승으로서, 652년 일본에 건너가 백제사(百濟寺)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 해에 중국 당나라에 가서 불법을 닦았다.

스님은 이 때 오자산(五子山)에서 3년 동안 석불 3,053체를 비롯하여 전당향(涅檀香) 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의 불교조각을 조성했다.
의각 스님은 655년 백제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는데, 귀국하면서 이들 석불을 싣고 바다를 건너 왔다.

그런데 백제 오산현 북포 해안에 이르렀으나 마땅한 절터를 잡지 못해

석불들을 몇 달 동안 그대로 배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배 안에서 치는 종소리가 해변 마을에 진동했다고 하여

이 부근의 마을 이름을 종성리(鍾聲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 있는 절터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금오(金烏) 한 쌍이 날아와 지금의 향천사 터를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산 이름을 금오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의각 스님에 이어서는 도장(島藏) 스님이 절에 주석 하였다.

도장 스님은 백제 멸망후 일본에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일본왕의 귀의를 받고 ‘동량지원수(棟梁之願袖)’라는 존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귀국해 향천사와 예산군 대흥면에 있던 송림사(松林寺)에 머물렀는데,

특히 698년(효소왕 7) 왕의 도움을 얻어 동관음전(東觀音殿)·서로전(西爐殿)·동선당(東禪堂)·서선당·

향적전(香積殿)·향설루(香雪樓)·서운암(棲雲庵)·관음암·부도전·타라암(陀羅庵) 등

전부 400여 칸의 전각과 암자를 지었다.

이로부터 향천사는 호서 지방의 손꼽는 명찰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에서는 보조 지눌(普照知訥)이 네 번째 중창을 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천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때 향천사에 머물렀던 멸운 혜희(滅雲惠希) 스님은 다른 70여 명의 의승(義僧)과 더불어

금산전투에 참가하는 등 왜적 격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멸운 스님은 1596년(선조 29) 절을 중창하여 전부 100여 칸에 달하는 당우를 새로 지었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보산(寶山) 스님이 10여 년간 주석 하면서 향천사를 중건했다.

그 뒤 1971년 극락전, 1982년 서선당과 단월당을 새로 지었고,

1985년 천불전과 나한전을 해체 복원했으며, 1986년 종각을 지었다.

현재 향천사는 다양한 신행단체를 운영하면서 불법 포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관음회로 부르는 전체 신도회를 비롯해서, 유마거사회·거사림회·중고등학교 학생회·초등학교 학생회·

불교합창단, 그리고 부설 유치원이 있다.

부설 향천유치원은 1989년 무렵 개원했는데, 현재 절 입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