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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납니다」의 시아버지에 대한 단상

화엄행 2009. 12. 26. 17:57

 

 

‘살맛’ 김유미VS임채무, 혼수전쟁 본격전개 기싸움 팽팽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2240844451001


MBC 일일드라마 ‘살맛납니다’ 김유미와 임채무가 본격적인 혼수전쟁을 시작했다.


12월 23일 방송된 ‘살맛납니다’(극본 박현주/연출 김대진 강대선)에서 인식(임채무 분)의 며느리 길들이기가 그려졌다. 인식은 외동아들 유진(이태성 분)의 짝으로 평범한 민수(김유미 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혼수로 복수를 결심한 것.


만복이 분가를 전제로 결혼을 허락하자 인식은 민수에게 신혼집으로 70평형 대 주상복합 아파트를 보여주고 “네 혼수로 꽉 채우라”고 했다. 이어 인식은 민수에게 최고급 가구를 비롯해 가전제품 혼수 리스트를 전했고, 민수는 억대를 넘는 최고급 가구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민수는 인식을 찾아가 “혼수를 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형편이 못 된다”며 “능력 닿는 데로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인식은 찻잔을 내리치며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왜 마주 앉아서 이따위 소리를 들어야 하니. 다른 집 같으면 감히 누가 시아버지 시시콜콜 혼수를 들먹여!”라고 분노했다.

결국 민수는 인식의 혼수 압박으로 체육관에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예비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혼수전쟁이 본격적으로 그려지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편 시청자들은 “인식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억대 혼수를 꼭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쪽과 “의사 사위를 얻는데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또 “양쪽 집안이 혼수에 대해 정확한 논의가 없었다”며 “결혼을 진행하며 혼수에 대한 갈등은 어느 집에나 있다. 혼수에 대한 허례허식 결혼문화를 꼬집는 방송이었다”고 평가했다.

[뉴스엔 엔터테인먼트부]]


 

                                                                    

「살맛 납니다」시아버지에 대한 단상

   

위에 게재한 기사내용처럼 모 방송국 드라마에 대한 평이 있다.
평상시에 이 드라마를 보지 않다가 우연히 재방송으로 위의 내용이 전개되는 부분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그 이전까지의 상황이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임채무씨가 맡은 시아버지 역할을 보다 보니,
위의 기사처럼 똑같은 마음으로 화가 치미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드라마 속의 재미를 위한 상황설정에 부질없이 덩달아 화를 내는 상황이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드라마처럼 극과 극의 설정으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이런 일이 아주 없지도 않으며,
또 예전에도 있었던 사례를 귀동냥으로 들어왔다.

 아주 먼 옛날의 일은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관두더라도,
 드라마의 사례이니 비슷하게 영화 등의 사례로 비교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딱히 어떤 영화라고 제목을 들 수는 없지만 대체로 60~70년대의 영화들의 보편적인 내용과 비교하게 된다.
당시에 위의 드라마와 같은 극과 극의 대비를 보이는 연인들이 결혼을 한다면,
대부분 신부되는 사람은 절절매고
또 신부측 집안에서도 그저 참고 살며 네가 잘하기에 달렸다고 딸에게 충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에서 보듯이 친정아버지는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친정식구들은 착하고 진솔한 집안이긴 하지만)
분가를 하게 해 달라 사돈 될 사람에게 요구하고,
며느리 될 사람도 당당하게 그러한 쪽으로 마음을 썼던 듯하다.
이에 권이적이고 독선기가 있으며, 자기가 누리는 삶의 모든 면에 자존심 강한 시아버지 될 사람은
신부측 부모와 며느리감을 괘씸하고도 무례하게까지 보게 되었으며,
내용전개에서도 밝히듯이 무리한 혼수를 요청하여 <며느리 길들이기>라는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결국 며느리 될 사람은 굴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시댁에서 함께 살겠다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되기 전에 호화 신혼집에 모든 혼수까지 시아버지가 모두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며느리 될 사람이 시아버지에게 차 안에서 건넨 말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앞으로 꼭 효도하겠다>는 말을 시아버지 될 사람에게 전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물론,
이미 방송이 된 내용을 다시 글로 되풀이 하려고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호화 혼수요구에 대한 화남에서 시작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시아버지의 그러한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고 동등한 인격을 부여받은 소중한 생명체인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영위하는 인간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며,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가치기준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어느정도에서는 비슷한 가치기준으로 생각하고, 그 비슷한 가치기준으로 되려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바로 이 비슷한 가치기준을 중심으로 사는 보편화된 생각을 한다면,
시아버지의 <며느리 길들이기>라는 생각으로 나타난 드라마 속 얘기에 수긍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순종적인 며느리와 형편이 않되는 친정부모가 절절맸다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요즘은 더더욱 인간평등과 가치기준의 평등 및 등등등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또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자신의 평등을 그토록 요구하고
<인간들이 되고 싶어하는 비슷한 가치기준>에 비추어 쟁취하려 하는데,
왜 여전히 겉으로 영위하는 현실은 그 <비슷한 가치기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이 소위 인간이 타고난 복의 문제일까?
 아니면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운이 부족해서일까?

아무리 평등이 어쩧고 뭐고 해도,
아무리 시대가 변천되었더라도,
이러한 <비슷한 가치기준>과는 어긋나는 것이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따라서 그 불평등을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속에서
인간의 고귀한 본성을 찾아 나아가는 노력이
오히려 진정한 평등의 길이요, 
<비슷한 가치기준>이 더 이상 <비슷한 가치기준>으로 머물지 않고 
<각자의 성향에 맞는 진정한 가치>의 실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친정아버지 되는 사람도
옛날시대처럼 비굴하게 절절맬 필요도 없이,
당당하면서도 점쟎게, 또 부드럽고도 정중하게 사돈에게 딸을 맡긴다 했으면 좋았을 것 같고,
또 딸에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시댁에 들어가 정성껏 다하라고 가르치면 될 일일 것이다.
또 며느리감도 분에 넘치는 분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앞으로 꼭 효도하겠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시아버지 될 사람이 자신의 불만을 억주록 참고 겨우 허락을 한 차원이기 때문에...

속칭 <수준의 차이>가 현실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마음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점쟣은 마음으로,
인간의 고귀한 평등성을 실현해 가는 정성이 필요함을 재삼재사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옛 사람들이 방법은 조금 달랐을 지라도,
오히려 현명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욕심이 없이 그저 겪는 상황이긴 하지만)
똑똑하게 쟁취하려드는 요즘사람들 보다도...

???!!!